매일신문

'만약…했다면' 조선의 운명은?…『역사 추리 조선사』

역사 추리 조선사/김종성 지음/인문서원 펴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다면 단종은 왕위를 지킬 수 있었을까?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패했다면 조선은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은 '필연'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살핀다는 면에서 '역사 가정'은 쓸모 있다.

이 책 '역사 추리 조선사'는 조선 개국에서 멸망까지, 조선왕조 500년의 운명이 결정된 극적인 순간 30장면을 뽑아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한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상상 속 역사를 쓰는 것이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고려 충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었고,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만약 정몽주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은이는 "정도전이 죽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 개국이라는 '큰 그림'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 근거로 지은이는 정몽주가 죽기 전에 정도전은 탄핵을 받아 유배 길에 올랐으며, 정몽주는 그를 죽이기 위해 암살 밀명까지 내렸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상상을 더 펼쳐보자.

고려 왕조가 1392년에 막을 내리지 않고 이어졌다면, 임진왜란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상상하자면 전국시대 일본의 역사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일본 전국을 통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오랫동안 이어져 내란이 그치지 않아야 조선 침공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양대군이 없었다면 단종은 무사했을까

수양대군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숙부였다면 단종 임금은 왕좌를 지켰을까? 지은이는 "어떤 경우에도 단종은 죽을 운명이었다"고 단정한다. 수양대군 말고도 단종을 위협할 인물들은 많았다는 것이다.

단종의 할아버지인 세종에게는 18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중 정실인 소헌왕후 심씨에게서 태어난 적자가 8명이었다. 문종(단종의 아버지), 수양대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웅대군이다.

현실에서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지만,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이 사망할 당시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강력했던 사람은 안평대군이었다. 그는 정치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학문과 예술 방면에서도 형제들을 압도했다. 서예에서는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

왕족인 데다가 다재다능했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안평대군은 전국의 능력 있는 선비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넓혔고, 그 세력은 수양대군을 능가했다.

게다가 안평대군은 야심가였다. 한 예로 그는 단종의 즉위를 승인받기 위해 명나라로 가는 사절단의 단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사절단 단장은 삼정승 중에 한 사람이 맡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종친 중에 윗사람이 맡는 것이 마땅했지만, 삼정승도 종친 중 어른도 아닌 안평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의 지지를 업고 자신이 단장이 되고자 했다. 명나라와 친분을 쌓아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했던 것이다. 나아가 안평대군은 수양대군의 책사인 한명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성공했더라면?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조선은 일본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갑신정변은 고종 21년 10월 17일(1884년 12월 4일) 발발했다. 김옥균은 주한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와 거사 계획을 협의한 뒤 주한 외교관들과 보수파 핵심들을 이날 저녁 열린 우정총국 개업 축하연에 초대했다. 그리고 화약을 터뜨려 도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정국을 장악하려고 했다.

화약이 폭발하자 김옥균은 고종에게 달려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니 외국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친필 서한을 받아 소수의 일본 군대가 고종을 호위하도록 한 뒤 그 위세를 빌려 정국을 장악했다. 그러나 청나라군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은 실패했고, 김옥균은 일본 공사 다케조에를 따라 일본으로 망명했다.

책은 '김옥균이 일본의 손을 빌리기는 했지만 평소 일본을 불신했다. 애초부터 김옥균은 일본을 끌어들여 청나라를 약화시킨 뒤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김옥균이 종국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이려고 한 것은 조선의 안전에 러시아가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 수도와 멀리 떨어진 조선에 큰 욕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인 러시아를 끌어들이면 청나라와 일본은 물론 서양 열강도 견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김옥균과 고종의 공통된 구상이었다.

갑신정변 성공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더라면 일본은 청나라보다 훨씬 막강한 적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청일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청일전쟁 승리로 얻은 막대한 배상금으로 일본이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30개의 가정으로 조선 역사‧운명 분석

이 책은 총 30개의 '가정'을 통해 역사를 회고한다.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정몽주가 살았다면 ▷이성계가 막내아들을 세자로 세우지 않았다면 ▷정도전이 죽지 않았다면 요동을 찾았을까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에게 양보하지 않았다면 ▷수양대군이 좋은 숙부였다면 ▷신숙주가 단종의 편에 서서 죽었다면 ▷조선시대에 대비의 수렴청정이 없었다면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중종 때 조광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퇴계 이황이 공부만 하고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선조의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바닷길 개척'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다면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고 권좌를 지켰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면 ▷효종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북벌에 성공했을까 ▷장희빈이 최숙빈과 손을 잡았다면 ▷장희빈이 끝까지 중전 자리를 지켰다면 ▷영조가 없었다면 탕평책도 없었을까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구출됐다면 ▷정조가 4년만 더 살았다면 ▷'괴물 여왕' 정순왕후가 권력욕이 없었다면 ▷조대비가 안동 김씨를 미워하지 않았다면 ▷고종이 문호 개방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성공했다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했다면 ▷아관파천이 없었다면 ▷칭다오맥주가 안 나왔다면 등이다. 276쪽, 1만5천원.

▷지은이 김종성은…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 '패권 쟁탈의 한국사' '신라 왕실의 비밀'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철의 제국 가야' '동아시아 패권전쟁' '당쟁의 한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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