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최고령 중구 동인시영아파트…내년 10월이면 영원히 사라진다

LH참여형 정비사업 추진 중…옛 모습 배경으로 영화촬영도
남은 가구 절반 노인 세입자, "어디로 가란 말인지…" 씁쓸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중구 동인시영아파트가 내년 10월쯤 철거될 전망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 중 25%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많은 이들이 정든 집을 떠나야할 처지다. 5일 오후 한 세입자 할머니가 폐지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중구 동인시영아파트가 내년 10월쯤 철거될 전망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 중 25%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많은 이들이 정든 집을 떠나야할 처지다. 5일 오후 한 세입자 할머니가 폐지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4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시영아파트. 바래고 얼룩진 회색빛 외벽은 5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줄지어 닫힌 출입문은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한 듯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 마당 화단은 조경수 대신 차량들이 차지했다.

아파트 한쪽에서는 영화 촬영카메라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 곳에선 대구 출신의 배우 이성민이 출연하는 영화 '비스트' 촬영이 한창이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아파트 한쪽 벽에 붉은 글씨로 '재개발 사업 철회'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나부끼는 이유다. 곧 사라질 동인시영아파트의 옛 모습이 영화 속 배경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다.

4일 오후 중구 동인시영아파트에서 영화
4일 오후 중구 동인시영아파트에서 영화 '비스트' 촬영이 한창이다. 이통원 기자 tong@msnet.co.kr

앞서 7월에는 중구 독립영화전용관에서 동인시영아파트의 50년 세월을 담은 '동인아파트 아이들의 기록'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주민 이모(85) 씨는 "사람과 아파트가 함께 늙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철거될 아파트에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기록이 남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 1969년 지어져 대구의 아파트 중 가장 오래된 중구 동인시영아파트는 내년 10월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구에선 처음 실시되는 LH 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덕분이다. 이 사업은 주민이 재건축·재개발조합을 설립하고, LH가 매입해 아파트를 짓되, 일부 가구를 행복주택으로 조성하는 방식이다.

재건축사업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주민들이 참여한 동인시영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은 지난달 14일 총회를 열고 설계업체를 선정했다. 현재 소유주 263명 가운데 행방불명된 한 명을 제외한 262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조합 측은 동인시영아파트를 허문 뒤 15~23층 아파트 5개 동을 지을 계획이다. 아파트에는 조합원 분양분 272가구와 LH행복주택 101가구 등 373가구가 들어선다.

조합 측은 이르면 내년 초 총회를 열고 건축설계 및 디자인 보안사항, 건축법 위반 여부 등을 확인하는 건축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조합원 분양신청과 관리처분인가, 시행계획인가 등을 마친 뒤 내년 10월쯤 철거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구 최고령 아파트는 새로 태어나지만 노인이 대부분인 세입자들은 시름에 잠겨있다. 곧 집을 비워야하지만 아직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272가구 가운데 아직 204가구가 살고 있고, 거주민 중 절반에 가까운 99가구는 세입자다.

세입자들은 대부분 이 곳에 터를 잡은 지 20~30년에 이르고, 절대 다수가 노인이어서 특별한 소득이 없다. 30년 간 이 곳에 살았다는 김모(80) 씨는 "정든 집을 떠나는 것도 서러운데 조합 측이 이사비용도 주지 않겠다고 하니 너무 야박하다"고 한숨지었다.

다른 세입자 신모(81) 씨는 "없는 살림에 겨우 전세를 얻어 살고 있는데, 이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길거리로 나앉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조합 관계자는"이사 비용와 향후 거처는 소유주과 세입자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며 "조합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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