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고정 출연을 몇 번 못하고 잘렸다. 내 잘못이다. 처음부터 하기싫다는 나를 부추긴 사람들 책임도 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얼굴이 방송에 나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점도 고민됐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있었고, 그밖에 골치 아픈 갖가지 일에 찌든 내 표정을 화면에 내비치기 싫었다. 거울에 빛을 밝히는 이반 나바로(Ivan Navarro>의 작품에 선 내 얼굴은 그때보다 밝아졌을까?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작가의 표정은 또 어땠을까?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끔 하는 단순반복의 착시효과는 현실 너머에 있는 매혹을 끌어들인다. 그 빛 뒤에는 어둡던 현실이 있고, 미술의 역사가 마법처럼 숨어있다. 나는 나바로가 태어난 칠레에 관해, 내 공부의 근원이 된 두 명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레나와 프란체스코 바렐라를 먼저 떠올린다. 구티에레즈 감독의 영화 '칠레전투'도 있다. 그리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어치우는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도 생각한다. 그 다음이 나바로다. 세풀베다와 마찬가지로 나바로도 독재 정권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나바로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피노체트의 억압은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환상적인 예술 작품을 나오게끔 했다.
다 좋은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강원도가 출신지인 사람에게 '감자 많이 먹었겠군요.'라고 하는 건 사려 깊지 못한 일반화다. 칠레 작가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피노체트를 팔아야 되나. 우리도 1970년대 유신 시절의 억압을 추상단색화로 풀어낸다는 작가들이 있다. 정작 그 시절엔 총칼이 두려워 쭉도 못 떼던 그 화가들을 투사가 된 것처럼 치켜세운다. 난 그런 작가나 비평가들을 존경도 멸시도 하지 않는다. 계속 관찰중이다.
나바로가 훨씬 대차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작품을 비싼 값에 많이 팔아 부자가 된 건 그 사람 탓을 할 수 없는 자기 복이다. 군사정권의 과오를 지우려고 칠레 민주 정권이 그를 은근히 밀었던 점도 그 행운 중 하나다. 밉상인 건 미국이다. 피노체트 군부를 등 떠밀어 아옌대 좌파 정부를 무너트린 미국이 이반 나바로라는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를 키웠다. 저항은 이제 상징과 암호로 남는다. 뭐, 이런 내 논리도 미국이 보수 정권과 자율적인 예술계와 미술 비즈니스의 집합체라는 단순 도식을 못 벗어난다. 작가가 내 글을 읽기야 하겠냐마는, 나더러 괜한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것 같다. 환상과 실재, 진정성과 대중성의 패러독스에 꼬인 자아정체성을 진작부터 고민했을 그이기에.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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