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남 탓'만 하는 문 정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델포이 신탁(神託)을 받아보고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신탁은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로 출병(出兵)하면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다"였다. 그러나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 패해 리디아는 페르시아의 속주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크로이소스는 신을 탓했다. 그러나 델포이 무녀(巫女)의 대답은 가혹했다. "신탁은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크로이소스가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대제국이 페르시아인지 리디아인지 물었어야 했다. 신탁의 뜻도 모르고, 살펴보지도 않은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것이 옳다."

이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는 분명하다. 자신의 결정과 행동은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델포이 무녀의 말은 '거짓 신탁'에 대한 교활한 변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대제국'이 페르시아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확신한 잘못은 온전히 크로이소스의 몫이다.

히틀러가 독소전쟁에서 패한 책임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당초 작전 개시일을 1941년 5월 15일로 잡았으나 6월 22일로 연기했다. 그리스를 침공한 무솔리니가 대패해 돕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은 틀어졌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히틀러는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도움은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며 무솔리니를 탓했다.

하지만 패배는 예정돼 있었다. 서쪽의 미국과 영국, 동쪽의 소련과 동시에 전쟁을 할 능력이 독일에는 없었다. 무솔리니를 도울 일이 없어 예정대로 5월 15일 소련으로 쳐들어갔어도 독일의 패배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여당 지도부와 회동에서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언론 탓'을 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여당 원내대표가 고용난을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렸다. '남 탓'은 비겁한 책임 회피이자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크로이소스는 무녀의 말을 전해 듣고 잘못은 신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문재인 정권에 이런 '내 탓'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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