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혈세 들여 제작한 대구 맛집 책자 '주먹구구식 선정' 논란

대구시·중구 등이 펴내는 책자, 심사 일정 예고하거나 안면 있는 공무원이 맛 평가… "공신력 낮아"

대구 중구청이 발간하는 맛집 가이드북
대구 중구청이 발간하는 맛집 가이드북 '맛락'. 중구청 제공

"이 식당, 중구 대표하는 진짜 맛집 맞나요?"

회사원 천모(31) 씨는 이달 초 대구 중구청이 발간한 맛집 가이드북 '맛락(樂)'에서 추천한 음식점을 찾았다가 크게 실망했다. 오랜 전통의 맛집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어렵잖게 찾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었던 것.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유명 식당이라는 안내 문구도 사실과 달랐다. 천 씨는 "책자에 적힌 전화번호가 실제 번호와 달라 예약조차 못한데다, 음식도 그럴싸한 소개와는 영 딴판이었다"고 불평했다.

대구시내 각 구·군이 지역 내 '맛집'을 추천하는 안내책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제작되고 있어 불평을 사고 있다. 미리 심사 일정을 통보하거나 위생과 공무원이 맛 평가를 하는 등 공신력이 떨어지는데다, 맛집으로 소개하기 적절치 않은 음식점들이 상당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시와 각 구·군이 제작, 배포한 맛집 홍보 책자와 리플렛은 모두 8만여 부, 투입된 예산만 2억7천만원에 이른다. 중구와 서구가 각각 6천만원으로 가장 많은 예산을 들였고, 북구 1천840만원, 달성군이 1천188만원을 들였다.

그러나 상당수 기초자치단체는 올해부터 맛집 안내 책자 발간을 중단했다. 서구와 달서구, 남구, 북구, 달성군 등 5개 구·군은 안내책자 제작에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주민들의 관심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을 중단한 것.

낮은 관심만큼이나 맛집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불만도 꾸준히 제기됐다. 기초단체들 중 상당수가 평소 음식점의 위생 여부를 점검하는 관련 부서 공무원들과 외식업 종사자들의 직능단체인 외식업중앙회 소속 회원들이 평가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 공무원과 소비자감시원, 외식업중앙회 회원 등 4명이 하루에 6곳까지 평가를 진행했고, 달서구와 북구·남구·달성군 등도 위생과 공무원이 포함된 평가단이 점수를 매겼다.

한 구청 관계자는 "블라인드 심사를 진행해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데 평소에 안면이 있는 공무원이 평가하다보니 객관적으로 선정하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부 기초단체는 무료로 음식을 제공받거나 평가 기준을 사전에 제공하기도 했다.

중구 경우 지역 대학교수 2명과 외식업계 관계자 2명으로 현장평가단을 구성했지만, 평가대상 업소 132곳의 점주들과 방문 날짜를 조율하고 시식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평가기준표를 제공하며 기준에 맞게 준비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구가 2006년부터 선정한 맛집은 모두 582곳(누적 기준)이나 된다.

대구시가 펴내는 대표맛집 책자 '탐미(味)'도 각 구·군과 외식업계가 추천한 자료를 바탕으로 행정 조치 여부만 확인한 뒤 선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각 구·군이나 외식업계의 추천이 있기 때문에 일일이 맛을 볼 필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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