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같이&따로] 말(言)의 잔치를 보며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구절이다. 강단에 서서 내가 하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항상 실수하지 않으려, 내가 하는 말의 씨앗이 나쁜 열매를 맺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말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뱉고는 후회하곤 한다. 말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열매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고, 타인의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하는 '말'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속담에도 말과 관련된 속담이 유난히 많은 것은 바로 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디지털시대 시공 제약 벗어나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불특정 다수에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말의 전파력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었으나, 이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과 관심사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를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인 유튜브이다.

유튜버!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직접 제작한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게시공유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2018년 교육부 조사에서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유튜버가 5위에 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구독자 수에 따른 광고 수입까지 벌어들이고, 잘만 하면 수억원의 연봉을 벌 수 있으니 희망 직업으로 높은 순위에 선정될 만하다. 다양한 영역의 유튜버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고, 모 방송사에서는 이런 경향을 반영해 유명한 유튜버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유튜브는 이제 공중파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정치인들까지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있다. 뉴스 프로그램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유튜브 채널이 더 호소력을 지닌다. 홍준표의 홍카콜라가 얼마 전 시작한 데 이어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며칠 전 첫 방송을 탔다. 이전에도 몇몇의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방송이 세간의 관심사가 되면서 누가 더 많은 구독자 수를 보이는지, 조회 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언론에서는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두 사람의 유튜브 방송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까지 언급하고 있다.

정치 유튜버 토론·타협 경쟁을

진보와 보수 혹은 우파와 좌파의 대결, 사실의 전달 혹은 주장을 통한 비판. 무엇으로 평가하든지간에 말의 잔치는 이제 시작되었다. 새해 벽두가 정치인들의 말 대결로 시작되는 걸 보면서 정치인의 말을 통한 사실과 주장, 비판과 분석, 추론이 피아(彼我)에 대한 근거 없는 선동과 선전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메시지(말의 내용)는 사라지고 메신저(화자)에 대한 비판만 남는 말의 잔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메신저를 찾아 자신의 편향된 의견을 더 확고히 하는 말의 잔치가 아니길 바란다.

흥겨웠던 한때의 잔치가 끝나고 나면, 허무한 감정이 파고든다. 말의 잔치가 끝나고 남는 것이 허무함과 상처가 아니라, 우리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토론과 타협의 흔적이 남기를 기대한다.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그런 유튜버의 경쟁을 기대해본다.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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