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가라오케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UN의 원조를 받아 겨우 명줄을 이어가던 최빈국(最貧國) Korea가 먹고 살만해지자 그들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신명이라면 한가락 하는 대구 사람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부산으로 일본 텔레비전 나오는 여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본 텔레비전이 잘 나온다는 용두산 공원 아래 여관 동네를 기웃거리는 대구 한량들이 많았다. 여관방에 죽치고 앉아 일본가수들의 노래도 듣고 드라마도 보았다. 그 무렵 부산에 상륙한 가라오케도 열심히 다녔다. 회식 때 기껏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거나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부르던 노래를 가라오케에서 부르니 천당에 온 것 같다. 반주에다 영상이 나오고 마이크가 되니까 신이 나고 호기심도 발동되어 인기 폭발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부산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대구에도 가라오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호구지책이 해결되자 사람들이 험한 일이나 고된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넥타이'들이 아무리 세뇌를 해도 속지 않았다. 남들이 하잖게 보고 힘든 일은 '3K'라고 불렀다. 위험(키켄), 고됨(키쓰이), 불결(키타나이)의 일본어 약자를 영어로 표시한 3K란 말을 썼다. 요즘 일본서는 3K에서 6K로 까지 발전했다.

"큐료(급료)가 적다. 큐카(휴가)가 적다, 각코(모양)가 나쁘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3K에서 3D(Difficult, Dirty, Dangerous)란 말로 약자를 바꾸었다. 바꾸는 김에 아예 우리 말 약자로 바꿀 일이지 왜 영어로 바꾸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 영어로 써야 폼이 나는 모양이다. 은행들도 제 이름 앞에 NH농협, IBK기업은행, DGB대구은행, KB국민은행으로 영어 약자를 붙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모양을 보면 아마도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일본의 '이노우에 다이스케'가 노래 반주기를 발명하고 이름을 '빈 오케스트라(가라 Orchestra)'라는 뜻으로 '가라오케'라고 명명을 했다. 1980년대 이 기계가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10년 쯤 뒤 부산에 상륙한 가라오케는 처음에는 우리도 가라오케라고 따라 부르다가 최근에는 법적으로는 '노래연습장'이고 속칭 '노래방'이란 이름으로 한국화 했다. 가수 김흥국이 자신의 노래 '호랑나비'를 노래방에서 불렀는데 46점이 나왔다고 한다. 멋 부린다고 기술을 너무 넣으면 그렇게 된다. 내 친구 중에는 지독한 음치가 있는데 노래방에서 가끔 100점이 나온다. 노래방 기계의 점수는 재미있으라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초기에는 노래의 음정과 박자 모두를 채점해 어느 정도 실력에 맞게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손님이 싫어했다. 스트레스 풀려고 갔다 스트레스 쌓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박자만 채점한다. 그 덕에 고함만 지르면 가끔 음치도 백점이 나오고 그들의 입이 귀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이고 '가요무대'가 다음 순위이다. 일요일 KBS와 같은 시간에 일본의 NHK에서도 전국노래 자랑을 한다. 일본에서도 가요무대가 있다. '진품명품'도 똑 같이 한다. 어느 쪽이 베낀 것이 틀림이 없다. 문화란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보다 나은 거 베끼고 배우며 질을 높혀 나가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원조(元祖)라며 거짓말하는 방송인들을 보면 정말 꼴 보기 싫다. 그런 것은 애국이 아니고 매국이다. 가라오케의 고향은 일본이고 우리는 그 걸 바탕으로 개발해 노래방으로 한국화를 했다. 언제 우리 것도 일본사람들이 배울 것을 창조해보자.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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