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학창 시절의 대학축제는 잊을 수 없다. 매년 '행연제(杏淵祭)'라는 이름으로 열렸고, 지금도 그 면면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자는 살구나무 행(杏)을 쓰고 있다. 옛날 중국의 오나라의 '동봉'의 고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봉은 뛰어난 의술로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고, 환자가 병이 다 나아서 사례를 하고자 하면 한사코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을 앓던 사람은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가벼운 병을 앓던 사람은 한 그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심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집 뒤의 동산이 살구나무 숲, 즉 행림(杏林)으로 바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살구로 건강을 지키고, 동봉은 많은 살구를 수확하여 곡식으로 바꾸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의술이 곧 인술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술을 펼치는 의사는 존경받아왔다.
지금도 동창회에서 매년 4번씩 꼬박꼬박 동창회보를 보내주고 있다. 제호는 '안행'이다. 물론 살구나무 '행'이다. 동문들이 제호를 접하면서, 학창시절 스승과 선배의사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의술을 펼치라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드물게 의술이 시술로 받아들여지고 상품화하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마음에 우러나오는 감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인기 드라마에서 의사가 희화화 되고 있고, 불만을 품은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임세원 교수가 진료실에서 흉기에 찔려 죽었다. 우울증을 딛고 자살예방에 힘을 쏟던 명의였다. 자살 징후를 일찍 발견할 수 있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해 낸 소중한 분을 우리는 잃었다.
설이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기해년 새해에는 돼지가 주인공이다. 이것 저것 많이 먹는다고 욕심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돼지는 육식, 채식, 더러운 것, 깨끗한 것 가리지 않고 용광로 처럼 녹여 하나되게 하는 강력한 소화기관을 갖고 있다. 올 한해는 모든 문제를 돼지처럼 풀어나가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달릴 수 있다. 그것만이 임세원 교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행복하고, 이로 인해 국민모두가 행복해지는 '행림마을'을 소망해 본다.
송도영 대구파티마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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