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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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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욱 대구가톨릭대 의대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박용욱 대구가톨릭대 의대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기원전 18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정식 결혼에 관한 법'(Lex julia de maritandis ordinibus)을 통해 결혼과 가족제도를 법으로 규율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계급 간 결혼을 막는 금령과 함께 상류층과 중산층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조항이 있는데, 말하자면 저출산 대책인 셈이다.

이 법에 따라 25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와 20세부터 50세까지의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았다. 사별한 부인도 1년 내에 재혼을 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았고, 독신자나 자식이 없는 이는 공직 진출에 제한을 받았다. 이 법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강화된 결혼법이 3세기까지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아우구스투스 사후 200년이 되도록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산 문제가 우리 시대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제국 시절 로마의 중상류층이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꺼릴 만큼 곤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곡창지대에서 염가의 밀과 면화가 거의 무한정 공급되었고, 공공 건축 사업이 진흥되어 돈푼깨나 가진 로마 시민들은 노예들과 서민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호화로운 생활을 향유했다.

기본적인 생필품이 염가에 공급되어 싼 임금으로 서민들과 노예들을 부릴 수 있게 된 전주(錢主)들에게는 아쉬울 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심지어 아우구스투스는 "벽돌로 지어진 로마를 발견해 대리석의 로마로 남겼다"고 자부했는데, 이는 로마 시민들이 민생고를 벗어나서 사치와 향락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서곡(序曲)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집트 같은 속주(屬州)의 희생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외면한 로마의 중상류층들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들의 현세적인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 미래 세대를 포기했던 것이고, 이들이 만들고 시행한 출산 장려법이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 대구의 청년 실업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지역내 1인당 총생산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역 총소득 증가율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은 증가 폭을 보였다. 경제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헛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통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수입차 등록대수로 보면 전국 229개 자치구 가운데 외제차 수입 상위 10곳 중 3곳이 대구에 있고 지역 백화점 판매액 또한 전국 최상위권이다. 수성구 아파트값이 부산 부촌 해운대구를 넘어선 게 벌써 두 해 전의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별 아쉬울 것 없는 이들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닐 것 같다. 나눔도 미래의 희망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사람들이 여론을 부추기고 정책을 조율하며 법을 만드는 자리에 있는데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대책들이 나올까. 타인의 희생을 모른 체 하면서 끝없이 현세적 욕망을 채우려는 풍조를 방치한 채로 미래를 논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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