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을 지낸 한 인사에게 물었다. 되돌아본 의원 시절, 가장 후회스러운 게 뭐냐고.
그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것을 해놓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탈 없이 의원 생활을 마무리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세비를 축냈다는 데 대한 참회를 하면서 최근 물의를 빚은 예천군의회 사태에서와 같은 지탄을 피해간 것에 대한 안도감을 에두른 것이었다.
그 역시 문제가 되고 있는 '외유성' 해외연수(공무 국외여행)의 경험자였다. 그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외연수를 떠나지만 준비 부족과 현지 사정 등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여행사를 통하다 보니 여행 스케줄에 연수 일정을 끼워 넣는 방식이어서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런 연수가 의정 활동의 보상으로 인식돼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의원'이라는 직함이 부지불식간에 특권 의식을 잉태했고 느슨한 감시가 특권 의식의 실행을 부추겼다"고 고백했다.
군의원의 가이드 폭행으로 촉발된 예천군의회의 해외연수 파문이 공분(公憤)을 사면서 지방의원 해외연수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베트남으로 떠났던 경북시군의회 의장들은 여론의 뭇매에 서둘러 귀국했고, 전국 곳곳에서 부적절한 해외연수 사례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여러 의회가 계획했던 해외연수를 취소하고, 급기야 임기 내에는 해외연수를 가지 않겠다는 의원들의 선언도 나온다.
그간의 지방의원 해외연수가 단단히 잘못 운용됐음을 의회가 자인하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 또한 거기에 예산이 허투루 쓰였으니 세금 낸 입장에서 화도 난다.
물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이를 질타하는 국민을 한 의원이 들쥐의 일종인 '레밍'에 비유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일이 불과 2년도 안 됐는데.
이럴 때 "우리는 해외로 연수를 간다"며 떳떳하게 밝히는 사례라도 있다면 부적절한 사례가 일부의 '일탈'이라 여기기라도 하겠건만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지방의회의 실정 같아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나마 의회의 자정 노력이 펼쳐지고 있고 정부도 ▷셀프 심사 차단 ▷부당 지출 환수 방안 마련 ▷정보공개 확대 ▷페널티 적용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의회의원 공무 국외여행 규칙'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니 또다시 속는 셈치고 지켜보는 수밖에.
문제는 이번 사태로 폐지론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지방의회의 앞날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확대와 지방재정 확충 등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있고 지방분권, 지방자치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될수록 지방의회 역할은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거시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지방의회는 지방정부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와 지원을 하고, 또 주민의 의사가 지방정책에 제대로 포함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일꾼이다.
내 삶과 직결된 지방의회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있어야겠으나, 우리 또한 전직 의원의 말처럼 감시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지난 지방선거 때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한 표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닌지 되짚어보자.
"군의원을 잘못 뽑은 우리의 잘못"이라며 속죄의 108배를 올린 예천군민들의 절규는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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