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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한때 이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 "항일을 하자니 몸이 고단할 것 같고 친일을 하자니 마음이 고단할 것 같고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말이오."라는 대사가 유행하면서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바람이나 별, 꽃, 웃음, 농담 같은 무용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무해 준다. 돈벌이에, 아이들 교육에, 인간관계에 지치다 보면 이런 무용한 것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 준다. 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무용한 것으로 살겠다고 나서는 것이 예술이다.

따지고 보면 예술이 언제 무용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예전에는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면 부모들은 가난하게 산다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말렸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굶어 죽기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술은 성행하고 앞으로 더 성행할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 무용성 때문에.

예술은 '즐긴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돈벌이를 '즐긴다'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처가 생노병사를 고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것을 고통까지는 아니어도 힘겨워한다. 나는 바로 그 고통 때문에 예술이 여전히 명맥을 이어갈 것이며, 미래에 더욱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 회피하고 치유하려는 본능이 있는데 예술에는 고통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숨 막히는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바로 이 바람이나 별, 꽃, 나무, 햇살 같은 무용한 것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이 무용한 것들을 화가는 화폭에, 작가는 책에, 배우는 스크린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창작한 예술작품을 향유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즐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상인가. 생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예술로 치유하면서 예술은 여전히 무용한 것으로 치부한다. 예술이 당장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 이래로 예술 없는 생활을 상상해 보라. 건축물은 실용적인 뼈대만으로 단조로울 것이며,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역할로도 충분할 것이며, 생활은 먹고 사는 일로만 영위될 것이다. 죽고 사는 일에 예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에는 예술이 필요하다. 인간은 동물처럼 먹이와 잠자리만 구하지 않아서 인간이고, 사유와 예술이 있어서 인간이다.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무용한 것들이 정작 인간의 영혼에는 가장 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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