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쯤 한 남자가 마약사범으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처분을 받아 우리 기관에서 상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단속이 허술하던 1980년대 부산에서는 마약이 유행처럼 퍼졌다고 한다. 그 시절 아침에 사람을 만나면 '어제 한잔했어요?'(마약을 했냐는 표현)가 인사였고 골목마다 주사기들이 넘쳐 났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 당시 기사들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심리 문제를 겪고 있다. 마약은 드러난 문제일 뿐이다. 영화 '마약왕'에서 주인공 이두삼도 그랬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한 남자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이두삼은 그를 죽이지만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을 이기려는 듯 자신의 팔에 마약 주사를 찌르게 된다. 그는 시달리기 시작한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엽총을 장전하는 그의 모습에는 광기가 흐르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총을 들고 쫓기는 듯 바깥을 경계하며 커튼을 치고 집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탁자 밑에 숨어서 '김일성이가 자신을 잡아 오라고 무장공비를 풀어 쫓고 있다'며 전화기에 대고 속삭이는 장면은 이미 현실과 망상이 구분되지 않는 분열증적 상태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마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과정과 결국은 약에 취해 자멸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이두삼이 겪은 그와 같은 현상을 '따라꾸미'라고 한다. '따라꾸미'란 마약 중독자들이 겪는 증상으로 환각, 환청 등 실제와 망상이 혼합된 미행의 상황을 말하는 그들만의 은어다.
최근에 '따라꾸미'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약사인 저자가 20년 동안 마약 중독자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실제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왜 마약을 끊을 수 없는지, 중독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실제 마약 중독자들이 경험하는 '따라꾸미'는 영화에서보다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더 강한 쾌락을 찾았지만, 즐거움은 없어지고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누군가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밤새 차를 몰고 도망을 다닌다. 또 어떤 이는 자기를 잡으려고 경찰이 총출동해 있다면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부여잡고는 '빨리 와 달라'고 애원하듯 상담자에게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 그들에게는 실제인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떤 이유에서든 마약을 접하게 되면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한 번쯤은 어떤 기분인지 느껴 보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중독자들도 처음엔 그랬다. 호기심에, '이까짓 것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고 어느 순간 가족도, 친구도, 일도, 자신의 주변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이렇게 말한다. "도저히 마약을 끊을 수 없다"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호기심으로라도 마약은 하면 안 된다고. 마약은 너희의 모든 것을 파멸해버린다고.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李대통령, 취임 후 첫 출국…G7 정상들과 양자회담 주목
TK가 공들인 AI컴퓨팅센터, 정권 바뀌니 광주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