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예천(醴泉) 소회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봉황은 신화,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이다. 봉황은 합성된 단어로 수컷이 봉(鳳), 암컷이 황(凰)이다. 성군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대한민국 대통령 휘장에 봉황이 쓰이고 있다. 한 송이 무궁화와 그 좌우에 한 마리씩 봉황이 장식돼 있다. 우리 대통령들 가운데 성군으로 추앙받거나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봉황 휘장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장자'(莊子) 소요유 편에 따르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깃들어서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예천은 중국에서 태평할 때 단물이 솟는 샘을 일컫는다. 경북 예천군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예천군은 소백준령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한 충효의 고장이다.

상서로운 봉황이 마신다는 예천에서 지명을 따온 예천군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천군의원들이 해외 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 대형 사고를 친 탓이다. 예천군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에 큰 상처가 났다. 다른 지역에서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언급되는가 하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에 차질을 빚는 등 사태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외유 추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예천군의회 임시회에서 군민들의 성난 민심이 표출됐다. '예천군의회가 예천을 죽이고 있다' '군의원 전원 사퇴하고 구속 수사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이 난무했다. "너희가 인간이냐" "너희 때문에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등 격한 항의도 쏟아졌다. 이 와중에 예천군의회가 1인당 100만원가량 항공료를 부풀려 신고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지금껏 예천군의원들은 진정성 있는 반성 대신 변명과 거짓말로 사태를 더 키웠다. 어느 누구 하나 앞장서 사태를 수습하거나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예천군민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는 지경이다. 의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고장이 더 상처를 입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의원들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결단을 내리는 게 예천군의 명예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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