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전과 대한민국의 기적은 환동해의 경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박정희 정부는 1967년 포항종합제철소(현 포스코)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축적된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 등 우방국들이 차관을 거부하자 박정희는 결국 대일청구권 자금 중 농업지원용 8천만달러를 전용해 가까스로 제철소 건설 자금을 조달했다.
신일본제철로부터의 기술 이전과 완벽 시공을 총괄한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의 집요한 노력으로 포철은 1973년 6월 제1고로에서 쇳물을 쏟아냈다. 이후 포철은 시설 확장을 거듭했고, 최첨단 파이넥스 공법을 독자 개발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소로 발돋움했다. 포스코는 현재 포항시 경제 비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는 울산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수출 가능한 국산 고유 모델을 개발하도록 압박했다. 단순 조립·판매하던 현대차의 고유 모델 개발은 자칫 회사 전체가 결딴날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최고 통치자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대차는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 개발에 착수했고 필요한 기술은 세계 곳곳에서 사 오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후 현대차는 독자적인 기술 축적을 향한 험난한 여정에 돌입했다. 끝없는 실패를 반복한 끝에 현대차는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울산, 경주 등지에서 현대차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50%를 상회한다.
원자력발전의 숨은 설계자도 박정희였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수시로 헬기를 타고 가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놓고 갔다. 이런 지원 덕에 1971년 고리원전 1호기, 1977년엔 월성 1호기 착공으로 이어졌다. 싼값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발전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동해안 건설 경기가 살얼음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부터 40년 먹거리 산업을 제공한 포항, 울산, 경주 등 환동해권의 현재 상황을 본다면 통곡할 노릇일 게다.
포스코가 포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지만 각 공단에는 공장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거래 은행은 공장 매물 중개에 바쁘다. 기업이 쓰러져 부실채권을 떠안지 않겠다는 심산에서다.
포스코의 전통적인 철강 제품은 중국의 맹추격으로 예전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 신공법으로 출시된 제품이 내일 중국에서 복사품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예전의 비교우위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다품종,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연료전지, 소재, 화학, 신재생에너지 등 신수종 사업 부문의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주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부품업체 상당수가 명퇴 신청을 받고 있거나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울산은 현재 석유화학 부문이 버티고 있지만 2017년부터 자동차, 조선업은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톱10'에 드는 우리 경제 규모상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형 혁신가'는 나올 수 없다. 환동해가 다시 한 번 부흥하기 위해서는 포스코와 현대차, 현대중공업, 원자력발전소를 잉태한 박정희처럼 또 다른 혁신그룹이 나와야 한다. 그 역할은 환동해권의 정치, 경제 리더와 정책 브레인들 몫이다. 지역 리더들이 새로운 발상과 기업가 정신으로 달리지 않으면 언젠가 환동해의 쓰나미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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