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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상리동 기피시설, 대구시가 나서라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대구시 서구 상리동 주민들의 설움이 폭발하고 있다. 워낙 여러 가지 기피시설이 이곳에 집중된 탓이다. 상리동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동물화장장 건립 논란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으로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최근 새방골 자동차정비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다시 분노를 토해냈다.

상리동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에서는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갔다. 하지만 그곳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면 이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오랜 세월 쌓여온 답답함이 응어리져 있었다. 상리동 주민들은 "그동안은 살기 바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며 "이제는 우리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상리음식물처리장, 분뇨처리장, 하폐수처리장, 염색산단, 와룡산 넘어 방천리매립장까지 이 모든 게 한동네에 밀집돼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배려는커녕 돌아오는 건 무관심뿐이라는 주장이다.

돌이켜보면 상리동은 동물화장장과 자동차정비공장 이전에도 여러 번 언론에 오르내렸다. 2016년 모 전 대구시의원이 상리동 임야에 도로 건설 예산을 빨리 배정해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가 구속된 전례나, 1965년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되고도 5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새방골~가르뱅이 도로 신설 문제 등은 상리동 주민들에게 소외감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심지어 건축허가를 완료하고도 주민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업자는 억울하겠지만 법과 현실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갖가지 기피시설이 모두 집적된 곳에서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또다시 전해진 달갑잖은 소식은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순식간에 분노로 번져나갔다. "이 정도의 심각한 반발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한 사업주의 말은 켜켜이 쌓인 주민들의 설움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반면 관할 지자체인 서구청은 주민들과 사업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도돌이표 같은 말에 주민들은 가슴을 쳤고, 사업주는 "법적 문제가 없는데 왜 허가를 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주변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재산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기피시설을 받아들이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다. 요즘은 상당수 지자체가 주민 공모를 통해 기피시설 부지를 선정하는 대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주민편익시설 건설비와 주민지원기금 등 혜택을 준다.

포항시는 최근 음식물처리장 신규 부지를 주민 공모를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 달성군 서재리 생활폐기물매립장의 경우 인근 주민 2만여 명에 대해 대구시 환경자원시설 주변영향지역 조례에 따라 연 2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상리동 주민들은 2011년 도시가스 무상 지원, 지난해 태양광발전기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받은 것이 고작이다. 최근에야 일부 서구의원이 나서 대구시에 지원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갖가지 기피시설 속에서 살아온 상리동 주민들의 해묵은 상처를 보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제는 대구시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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