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말로써 말 많은 나전칠기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고려조 500년의 전통미술품으로 알려진 나전칠기(螺鈿漆器)가 최근 설화(舌禍)의 중심에 놓여 수난을 당하고 있다. 나전칠기란 칠공예의 장식기법으로 얇게 간 전복이나 소라 등 형광 형태의 조개류 껍데기를 오려 내어 옻칠 기물(器物)의 표면에 입히는 '자개박이'를 말한다. 대구․경북의 유명 가구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값비싼 자개농이나 화장대, 문갑 등에 많이 쓰이는 공예기법이기도 하다.

그런 나전칠기가 정치권력의 입김에 따라 문화재로 둔갑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비로 사들이라는 구매 압력까지 받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게다가 전통미술의 대표성을 자랑해온 나전칠기가 부동산 투기의혹에 휩쓸리고 대통령의 휘장이나 선물용 시계와 영부인의 손지갑에도 장식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떠올리는 얘기까지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나전장인(螺鈿匠人)의 반열이나 제조기법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전칠기가 마치 자신의 전유물인 것처럼 정치권력이 내뱉는 '말'의 성찬(盛饌)이 문제를 더 키운 게 아닐까? '말'이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인 언어의 체계이다.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하지 않고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말도 가려서 해야 한다.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하면 자칫 말꼬리를 물고 설화를 자초하기 마련이다.

말에도 맛이 있다고 한다. 쓴맛, 단맛, 쓴소리, 단소리…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도 있지만 툭, 한마디씩 던져도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있다. 말이 많지만 조리정연하게 물 흐르듯 청산유수(靑山流水) 같은 말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남의 말을 무시하고 듣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막말까지 쏟아내는 것은 탁수난류(濁水亂流)다.

새삼 조선조 영조 때의 선비 김천택의 가집(歌集)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글이 생각난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 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이란 덧붙일수록 여러 해석과 오해를 낳아 문제를 더 키울 수 있으니 아예 입을 닫는 게 낫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남없이 말조심하며 살아야겠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