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버무린 '자신감'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누군가가 자기 심장을 걸고 어떤 사실을 믿는다 치자. 나아가 이 사람이 자기 믿음에 집착한다고 치자. 또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행동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마지막에 이 사람 앞에 그 믿음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다고 치자. 이때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사람은 의연하게 일어설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한층 더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말이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틀린 것으로 판명됐을 때 이를 인정하기보다 현실을 편리한 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왜? 자기 믿음을 배신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믿음에 맞춰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현실을 왜곡해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한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다.

문재인 정권도 여기에 빠져 있다.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데도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 위기는 없다는 무조건적 믿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현실 왜곡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확고히 왜곡해야 한다. 그 수단이 '수구 세력의 경제 위기설'이다. 수구 세력이 '경제 위기설'을 조작해 퍼뜨린다는 '음모론'이다.

이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망라한 '범(汎)문재인 진영'의 공통된 믿음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수구 보수 세력은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 위기론을 퍼뜨리고 자영업의 어려움을 빌미로 경제 무능론을 유포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말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성과가 있는 데도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올 초 "경제 위기설은 한국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이해동맹·이익동맹"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음모론'이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설'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설 음모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것이 '가짜 뉴스'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거나 "세계가 우리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것이다.

언론의 '팩트 체크'로 이런 발언이 '가짜 뉴스'로 드러났음에도 문 대통령은 가짜 뉴스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가계소득, 상용직, 청년 고용률 등을 언급하며 "개선됐다" "늘어났다" "높아졌다"고 했다. 대부분 '의도적 오독(誤讀)'이거나 유리한 부분만 '뻥튀기'한 '선택적 오독'이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문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높아졌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작년 3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을 보면 고소득층은 늘어났고 저소득층은 최하위 계층이 7%, 차하위 계층이 0.5%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보호하려는 저소득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금 경제 현장에서는 '죽겠다'는 비명이 진동한다. 하지만 '경제 위기설 음모론'과 '대통령발(發) 가짜 뉴스'를 보면 아직은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국민 모두 올해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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