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김주영 소설가·객주문학관 명예관장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고국 눈부신 경제 발전에 놀란 교포

여기저기 쏟아지는 불만에 더 놀라

'지옥'은 마음속에 있는 건 아닌지…

저마다 삶에서 보람과 기쁨 찾기를

그는 재미 교포다. 미국 생활 십수 년 끝에 최근 고국을 방문했다. 무엇보다 고국의 눈부신 발전에 무척 놀라고 감동 받는다.

우뚝우뚝 바라보이는 고층 브랜드 아파트. 미국에선 부잣집에서만 있는 비데가 한국에선 공중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고, 골목마다 중형차들이 가득가득 들어섰고, 아파트 입구마다 차량번호 자동 인식 주차장이 있고, 어디서나 빠른 인터넷, 뛰어난 교통카드, 버스 도착 알림판, 거미줄 같은 지하철에 안전 스크린도어, 수많은 TV 채널, 저렴하고 편리한 택시, 밤낮없이 열려 있는 편의점, 빠르고 정확한 대리운전 서비스, 전화 한 통이면 득달같이 도착하는 배달음식, 거리마다 널려 있는 원두커피 카페들, 손바닥마다 들려 있는 비싼 휴대폰들, 순식간인 배송 서비스, 열쇠는 옛말 비번과 카드키, 해외 여행객들로 붐비는 공항.

미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건강검진과 치과 치료를 마친 후 냉장고가 두 개나 있는 친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다가 너무나 매끄럽게 열리고 닫히는 것이 신기해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미국 촌놈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나는야 가슴 뿌듯한 해외 동포. 그러나 진짜 그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겠어, 힘들어, 정치가 개판, 나라가 썩었어,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푸념하고 성토하는 모습들,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등골이 빠진다.

전셋값 올라서 살 수가 없어, 여자라서 밤길 나가기가 무서워, 정리해고당하는 나라에 살고 있어, 55인치 대형 TV 속 수많은 사람들도 다들 힘들어 죽겠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미국 대학 등록금은 놀랄 정도로 더 비싸고, 나는 전세는커녕 월세가 3천달러, 미국은 남자도 밤길이 무서워 외출을 삼가야 한다. 보험 병원비도 훨씬 더 비싸고, 밥 한 번 먹어도 팁에 세금 25% 추가. 내 주변의 인텔 등 IT 회사들도 수천 명씩 정리해고된다.

치안, 위생, 수질, 기술 도시 인프라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에서 저렇게 죽는소리들을 하는 게 신기하단다. 그래서 진짜 지옥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건 아닌지…….

옛날에는 조국이 잘 살게 되기를 기도했었는데, 이제는 조국 국민들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해야겠다는 것으로 그이 글은 끝을 맺는다. 그는 고대했었던 고국의 발전된 모습을 목격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선진국에서도 엄두를 못 내는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어쩐 셈인지 끊임없이 구차한 삶을 호소하는 고국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그의 등 뒤에 드리워진 어둡고 긴 그림자를 바라본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일컫는 미국과 중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다면, 그들 나라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는 열거하기가 차고 넘칠 만큼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회사원들의 연봉이 우리보다 적은 기업체들도 그들 나라에는 널려 있고, 공무원들의 근무 태도 역시 역겨울 정도다. 민원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의 업무처리는 불친절을 넘어 위압적이다.

썩은 통나무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가 대초원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노루를 부러워한다면, 그 달팽이는 가슴을 쥐어짜는 좌절감과 수치심으로 평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가지는 정체성과 특징적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터득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정중히 제안했던 국무총리 자리를 한마디로 거절했다는 구상 선생의 '꽃자리'라는 시구가 이 순간 뇌리를 스친다.

(중략)/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내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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