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창조를 이끄는 힘, 몰입

 김계희 그림책 화가

김계희 그림책 화가
김계희 그림책 화가

어린이 미술 지도는 쉽고 재미있기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교육 과목이다. 그래서 학교 밖 미술교육 시장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것에 중점을 둔 커리큘럼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재미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아직 집중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그 이상의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 미술 교육 현장의 한계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면 아이 스스로 능동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스케치를 할 때 이미 그려진 도안을 아이가 따라 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도안을 따라 그리게 하면 초반에 드로잉에 빠른 발전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상상력이나 관찰력, 실험정신은 막을 내리게 되기 십상이다. 또한 밑그림 자료가 제공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힘들어 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힘이 바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몰입을 통해 자신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참다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의 시기에는 드로잉이 무척 섬세하고 견고해지며 구성에 자유로움이 깃든다. 이것이 바로 형태나 디테일을 맨 뒤 순서에 두어도 되는 이유다. 가르치는 사람은 기술이나 디테일보다는 단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기존의 사물을 그릴 때, 지금까지 그려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그려보도록 제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세상에 없는 나무, 세상에 없는 꽃,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독특한 의자 등을 그려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그림에서 독특한 부분을 찾아내어 그것이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칭찬을 해 주면 된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어 더욱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게 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에 페달을 세게 밟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다쳐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도록,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핸들에 중심이 잡히고 자전거는 앞으로 달려간다.

물론 칭찬과 격려가 아이에게 정확히 전달되려면 아이의 전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정면에서가 아닌 보이지 않는 뒤편의 어느 곳을 건드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터치 속에서 아이의 눈도 함께 섬세해진다. 눈이 섬세해진다는 것은 뇌가, 생각이 섬세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형태와 디테일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발전을 이룬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을 만큼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고개를 숙여 확인하지 않는다.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한 자전거는 달릴 수 없다. 가르치는 일을 맡은 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게 톡톡 자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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