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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전 포스코 회장은 누구?

YS정부 깜짝 발탁…포스코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

1994년 3월 30일 열린 국회 상공위에서 김만제 신임 포철 회장이 제2이동통신의 지배주주로 선정된 경위 및 업무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994년 3월 30일 열린 국회 상공위에서 김만제 신임 포철 회장이 제2이동통신의 지배주주로 선정된 경위 및 업무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85세로 별세 김만제 전 부총리

37세 때 KDI 초대원장 발탁

1994년 포스코 회장 취임

김만제 전 부총리는 관료 생활을 접은 뒤 삼성생명 회장, 포항제철 회장 등 최고경영자로도 활동했다. 특히 고인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을 제외하고는 포스코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역대 회장으로 꼽힌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깜짝 발탁되며 포스코와 인연을 맺은 김 전 부총리는 가장 먼저 직원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나서 내부에서 호평을 받았다.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포스코를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는 아직도 유효하다.

고인은 1934년 구미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했다. 미국 덴버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미주리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9세에 미국 미주리주립대 교수를 시작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을 거쳤다.

김 전 부총리는 서강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던 1971년 37세의 나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KDI 초대 원장으로 발탁됐다.

연구원 한 명 없는 초대 원장이었지만, 그는 11년간 KDI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박영철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송병락·홍원탁 서울대 교수 등을 직접 만나며 한국 경제발전을 이끌 연구진을 구성했다.

KDI 원장에서 퇴임한 김 전 부총리는 한미은행장으로 잠시 재직한 후 재무부 장관을 거쳐 1986년 경제부총리로 취임,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다. 그는 1975~1981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직을 맡아 통화정책 수립에도 힘을 보탰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당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4년 정명식 포항제철 회장과 조말수 포항제철 사장이 경질된 후 포스코 회장에 올랐다.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자리를 내주며 4년 만에 물러났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4년간의 정치활동을 끝낸 뒤에는 낙동경제포럼 이사장, 산학연구원 이사장, 대구경북경제통합포럼 공동대표, 대구시 경제고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이사, 대한민국 발전포럼 고문 등을 역임했다.

장례절차는 KDI장으로 진행되고 최정표 KDI 원장과 남상우 KDI 연우회장, 정명식 포스코 중우회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포스코는 역대 회장으로서의 예우에 부족함이 없도록 장례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에 마련된다. 2일(토) 삼성서울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되며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구혜 씨와 아들 성우, 딸 지영·지수, 사위 윤종수·김용성, 며느리 함지은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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