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 봄이 온다, 양산 통도사…홍매화 봄마중

봄을 영접하는 이들의 성지, 통도사 홍매화
아름다운 숲 '무풍한송로'는 아이디어 저장소
천성산의 비경 홍롱폭포와 법기수원지

매서운 추위 대비 잘 하시기 바란다던 기상 예보가 가물가물하다. 입춘 지난 지 사흘이다. 한낮 기온이 두 자릿수를 넘나든다. 햇살에 봄이 실렸다.

꽃이 피었으리라 짐작하는 건 희망사항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다. 나뭇가지마다 생기가 돈다. 꽃봉오리가 씰룩거린다. 꽃망울 저 멀리로 산봉우리는 새하얗다. 섭리의 확신을 담보로 봄은 진격한다. 산등성 눈밭도 봄을 맞을 운명이다. 반복돼온 역사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봄을 본다. 홍매화가 절집 마당에 피었다. 봄이 온 것 같다 하여 봄의 전령이라 불린다. 홍매화 옆으로 동백, 단풍, 목서의 가지색이 핏기가 오른 듯 불그스름하게 올랐다. 영락없는 봄의 신호다.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봄소식에 통도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소식을 전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봄소식에 통도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소식을 전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홍매화, 봄은 왔다

겨울 하늘이 높다. 깊게 푸르다. 하늘을 배경삼은 홍매화 꽃잎은 선명하다. 햇살이 꽃잎 을 열어 펼친다. 매화의 붉은 색이 아우라로 머문다.

합장을 하고 경내에 들어섰든 그렇지 않든, 통도사에 온 이들은 홍매화부터 찾는다. 영축산 능선에 하얀 눈이 멀리서도 선명하다. 반쯤 열린 꽃송이로 가득한 홍매화는 봄이다.

홍매화가 피었다는 영각(影閣) 앞마당. 봄을 영접하는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꽤 오래 이어진 탄성임에도 지겨움이 없다. 홍매화 움직임에 이들의 숨소리도 따라 바뀐다. 한동안 셔터 소리만 요란하다. 찍고 또 찍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꽃이 없다는 듯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영축산 잔설과 봄의 전령인 매화가 어울려 계절의 교착점을 느끼게 한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영축산 잔설과 봄의 전령인 매화가 어울려 계절의 교착점을 느끼게 한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영각 앞마당의 이 홍매화나무, 따로 이름이 있다. 자장매(慈藏梅)다. 수령 370년 정도다. 자장매의 유래는 이렇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에 나선 우운대사가 1643년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불타버린 역대 불교계 스승의 영정을 모시는 영각을 건립한다.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마당에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 해마다 음력 섣달에 연분홍 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이를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심전심이라 믿어 '자장매'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봄소식에 통도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소식을 전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양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재촉하고 있다.봄소식에 통도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소식을 전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경내에는 홍매화를 피워낸 자장매뿐 아니라 능수매화, 흰동백, 청단풍, 금목서, 은목서 등도 봉오리에 솜털을 달았다. 솜털이 더듬이마냥 바람의 온도를 잰다. 곧 꽃봉오리를 터트린다는 신호다. 나뭇가지도 선명한 색감으로 붉다. 생기가 돌고 있다. 홍매화 홀로 봄을 알리는 게 아니었다.

천년고찰인 양산 통도사와 영축산 산등성이의 잔설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천년고찰인 양산 통도사와 영축산 산등성이의 잔설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통도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빛바랜 통도사다. 흑백사진의 가운데 서있는 기분이다. 단청과 벽화는 대개 색이 바랬다. 경건해진다. 소원이 없어도 뭔가를 빌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뭘 빌어야하나. 바라고 또 바라도 끊임없이 생겨나는 바람들, 욕심이다.

사찰 건물은 경내를 오가는 불자와 승려의 회색빛과 어울린다. 노포의 느낌이기도 하다. 전통성의 표시다. 실제 오래된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창건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가져와 지은 절이다. 진신사리는 부처의 법신을 상징한다. 때문에 불보종찰이라 한다. 부처의 가르침이 적힌 고려대장경을 보관하는 합천 해인사는 법보사찰, 보조국사 등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순천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불린다.

규모가 크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된 안동 봉정사를 고등학교에 비유하면 통도사는 대학교 크기다. 참선수행을 위한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총림(叢林)이다. 대구의 동화사에 비견된다.

양산 통도사 입구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물소리,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시나마 세상의 일들을 잠시 내려 놓는다.이채근 기자 mincho@mimaeil.com
양산 통도사 입구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물소리,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시나마 세상의 일들을 잠시 내려 놓는다.이채근 기자 mincho@mimaeil.com

◆무풍한송로, 길의 개념 전환

1.5km가 이렇게 짧은 줄은 미처 몰랐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솔밭길이다. 함께 나란히 흐르는 양산천, 자장동천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개울이 솔밭길의 단조로움을 깬다. 이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양산시의 홍보에 공감하면서 길이 단지 공간적 개념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이름처럼 바람이 살방살방 춤출 정도의 바람 세기다. 여름철 명소라 흔히들 말하는 골짜기 바람길이 아니다. 그저 걷기 수월한 길이다. 길을 걸으면 생각과 추억과 아이디어가 순서없이 나온다. 한 사람이 가진 인생의 모든 경험과 지식이 길이라는 공간과 걷기라는 동작에 새롭게 뒤섞이고 정리된다.

양산 통도사 입구 다리
양산 통도사 입구 다리

자동차를 타고 통도사 주차장 안으로 훅 들어오면 놓치기 십상이다. 통도사 매표소에서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차도의 소나무 역시 울창하나 걸어서 소나무 숲 터널을 지나는 호사에 비할 수 없다.

지난해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곳이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곳들은 으레 전국적 시선을 받아 힐링으로 연결되는데 우리지역에서도 포항 덕동마을 숲이 2006년에, 영양 주실마을숲(2008년), 영양 일월 도곡리 마을숲(2013년)이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천성산자락의 홍룡폭포.갈수기로 수량이 줄어 힘찬 물소리를 들을순 없지만 관음전과 어울린 빼어난 경치는 일품이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천성산자락의 홍룡폭포.갈수기로 수량이 줄어 힘찬 물소리를 들을순 없지만 관음전과 어울린 빼어난 경치는 일품이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천성산 서쪽 홍룡폭포

'양산'이라는 지명의 어감은 따뜻하다. 볕 양(陽)이 쓰여 '양산'이라 불릴 거란 짐작에서다. 실제는 대들보 량(梁)의 양산이다. 해발고도 1천m 이상의 준령이 한동안 이어지는 영남알프스는 양산지역의 대들보처럼 길게 늘어서 있기도 하다. 양산의 명산, 영축산과 천성산의 무게감이 '대들보 산'이라는 지명과 무리없이 연결된다.

천성산 비경 중 하나가 홍룡폭포다. 홍룡사라는 사찰에 있는 폭포다. 그런데 사찰 옆 폭포가 아니라 폭포 옆 사찰이다. 홍룡사 뒤편을 천성산 등산로 초입으로 삼는 이들이 있지만 대개는 폭로를 보러 올라온다.

홍룡폭포는 관음전 옆으로 떨어지는 23m 높이의 폭포다. 천성산의 울창한 숲 사이로 물줄기가 떨어진다. 다른 폭포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중·하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햇살 좋은 날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가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홍룡이라는 지명도 황룡이 무지개를 타고 승천하는 것 같아 붙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중창하면서 '홍룡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일주문에 적힌 정식 명칭은 '홍롱사(虹瀧寺)'다. 무지개 홍(虹), 젖을 롱(瀧)이다. 무지개에 젖은 사찰이란 뜻이다.

사찰 초입 안내판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홍롱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3년 원효대사가 자신을 흠모하던 당나라 승려 1천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해 세웠다. 창건 당시엔 승려들이 절집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다 해서 이름을 낙수사(落水寺)라 했다.

뒤늦게 천성산을 곱씹는다. 원적산이던 본래 이름에서 승려 1천명이 성인이 돼 천성산이란 이름으로 불린다는 곳.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해 기억을 검색하니 도롱뇽이 툭 튀어나온다.

그렇다. 양산을 세로로 가르고 있는 천성산은 고속철도 터널 공사로 진통을 겪으면서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졌던 산이다.

법기수원지 하늘계단 124계단을 올라서면 수원지 둑 정중앙에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반송 7그루,일명 7형제 반송을 만난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법기수원지 하늘계단 124계단을 올라서면 수원지 둑 정중앙에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반송 7그루,일명 7형제 반송을 만난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천성산 남쪽 법기수원지

천성산 서쪽에 홍룡폭포가 있다면 남쪽 자락에는 법기수원지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완공된 법기수원지는 출입을 제한하다 2011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현재도 7천여 가구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 2의 남이섬'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곳이다. 단, 남이섬은 입장료와 뱃삯이 있지만 이곳엔 그런 게 없다.

아름드리 편백나무를 비롯해 동대구로의 상징인 히말라야시더 등이 열을 맞춰 자리 잡고 있다. 덩치에 비해 뿌리가 깊지 않아 태풍에 아주 약하다는 산림조합중앙회의 의견과 2003년 태풍 매미에 넘어져 있던 모습에 병약한 줄만 알았던 히말라야시더였다. 높이 30미터의 히말라야시더 59그루 무더기를 보면 그런 이미지는 도저히 그릴 수 없을 지경이다.

수원지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수목원에 가깝다. 수령 100년 안팎의 나무 644그루가 수원지 안에 있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한 눈에 데이트코스임을 직감한다. 찾아오는 이들도 대개 커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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