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명절 풍속도도 바뀌고 있다. '고생길'에다 정신적으로도 힘든 고향 방문을 포기하는 대신 각자 휴식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충전하거나, 온가족 여행을 떠나는 등 스트레스는 줄이고 실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풍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예 명절의 의미를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진현(36) 씨는 올해 설 명절 처음으로 시댁을 가지 않고 울산에 있는 언니 집을 찾아 여유로운 시간을 누렸다. 큰맘 먹고 시부모님을 베트남 해외여행을 보내드린 덕분이다. 이씨는 "온 가족이 같이 가려니 금액이 너무 부담돼 시부모님만 여행 보내고 대신 우리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며 "교통체증과 명절 음식하는 스트레스를 피한데다 간만에 가족 여행까지 즐겨 일석삼조"라고 했다.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며느리들이 늘면서 홈쇼핑 등에서는 '애프터 설날'을 겨냥한 다양한 선물을 선보이고 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크게 한턱 쏠 만한 '호캉스'(호텔+바캉스) 상품이나 명품백, 귀금속 등을 연달아 방송한 것.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까지도 명절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명절을 없애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해부터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청원자들이 명절 폐지를 주장하는 공통된 요지는 "핵가족 시대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며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전통 계승의 의미가 퇴색했으니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SNS에 이 같은 국민청원을 공유한 미혼여성 A(35) 씨는 "우리도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처럼 간소하게 보내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댁과 친정 방문 순서를 번갈아 가며 방문하는 이들은 물론, 아예 시댁가기를 '보이콧'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B(41) 씨는 이번 명절 처음으로 시댁가기를 거부하고 홀로 호캉스를 즐겼다. B씨는 "맞벌이에 쫓겨 휴식이라고는 모르고 산 나에게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오롯한 휴식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해 겨우 남편과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며 "전쟁 같은 명절이 아니라 내 안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돼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플러스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세태 변화에 대해 엄기복 대구여성가족재단 일가정양립센터장은 "전통을 고수하는 세대와 새롭게 전통을 만드는 세대가 공존하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고령화에 따라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차례 제사 등을 강요하지 않아 명절 모습도 바뀐다는 설명이다. 엄 센터장은 "앞으로는 호칭 변화 등 남녀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이런 틀에서 명절에 대한 정책 방향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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