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이중섭의 대구

김영동 미술평론가

이중섭 작
이중섭 작 '동촌 유원지'

전선택 선생이 대구에 정착하고 어느 날 학교 선배인 이중섭을 대구역 부근서 만나 칠성동 단칸집까지 모셔가 한 끼를 대접한 일이 있었다. 이중섭은 1950년 말 월남해 남한에서 5년 남짓을 살고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 개인전을 대구서 연 셈이다. 이중섭은 1936년 오산고보를 졸업했고 1937년에 입학한 전선택과는 여섯 살 차이로 학창 시절 만난 인연은 없지만 피난지에서 선후배로 함께 나눈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 물고기나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전선택 선생의 많은 그림들을 보면 그의 영향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이중섭은 어린 시절 평양의 외가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로 진학해서 임용련 백남순 부부를 미술교사로 만났다. 졸업 후 일본 유학을 거쳐 고향 원산으로 귀국했다가 활동의 제약을 받자 6·25 전쟁 중에 월남했다. 처음 제주도에서 약 1년간 가족과 함께 머물렀는데 그때의 흔적을 현재 서귀포시는 이중섭미술관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 피난 생활의 곤궁함을 면할 길이 없자 후일을 기약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다음 홀로 남게 된 그는 부산과 통영, 진주 마산 등지로 전전하다 휴전으로 평온이 복구된 서울로 상경했다.

오직 헤어진 가족들과의 재회만을 꿈꾸며 그림에 매달려 왔던 그는 통영 전시에 이어 1955년 1월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여점의 작품이 팔렸으나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로 애태우던 그를 시인 구상이 그의 대구 전시를 적극 주선했다. 그러나 야심적으로 준비했던 대구전시도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병까지 얻고 말았는데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대구와 구상의 왜관 집을 오가며 요양했다. 8개월여 대구서 머문 동안 제작한 그림들이 상당하겠지만 '구상의 가족'과 '왜관 성당 부근' 그리고 대구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동촌 유원지' 풍경 등은 쉽게 특정된다.

팔공산과 금호강이 분명한 강물 위에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백사장 모래톱에는 야영객들의 천막 그리고 키 큰 미루나무 아래로 평상을 내놓은 간이음식점 모습 등이 영락없는 '동촌 유원지' 광경이다. 전경에 군복 차림 남자의 손을 끌며 걷는 중섭이 보인다. 고개를 젖히고 팔을 쳐든 몸짓을 볼 때 낮술이라도 한잔 든 듯하다. 하늘에서 별안간 굵은 소낙비가 내리는 형국을 빠른 연필 스케치 위에 담채로 슬쩍 표현했지만 이중섭의 예술의 완숙기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이후 1년 뒤 그가 불귀의 객이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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