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야구는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82년 프로야구의 탄생을 계기로 열렬한 애호가들을 확보하고 있는가 하면, 본고장인 미국의 프로야구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도 있다. 우리나라 야구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더듬어 본다.
1899년 9월 기독교 선교사 브루엔(H․M․Bruen)이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그의 이삿짐 속에는 방망이,공,포수 마스크,글러브 같은 야구 장비가 들어 있었다. 그는 야구광이었다. 1900년 3월 25일 기록에 따르면, 소년야구단을 만들었으니 이는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이라고 적고 있다. 그가 야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소년들을 처음 만났다. 그 가운데는 이갑성,김학철,김주호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브루엔은 운동복이랍시고 반바지와 헐렁한 셔츠를 입고 모자를 썼다. 그 모습을 본 한국어 선생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맨 다리에다 두루마기도 입지 않고, 체통 없이 모자를 눌러 쓰다니! 제발 집으로 돌아가서 예의를 갖추어 옷을 걸쳐 입으라"며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브루엔은 그대로 야구를 하러 갔다.
소년들은 방망이로 공을 치는 데 버거워하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기가 꺾이지 않도록, 몇 가지 기술을 익힐 때까지 방망이 대신 테니스 라켓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야외활동으로 주일학교 야구팀을 운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 뒤 1915년 이갑성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에는 대구에 내려와 3․1운동 계획을 전파하면서 거사에 동참하도록 설득하였다. 또한 그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최연소자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야구는 1920년 7월 조선체육회가 창립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이 일시 정지되었다. 1945년 10월 조선야구협회가 다시 조직되었고, 1946년 9월에는 휘문,경신,배재,중앙 등 4개 팀이 서울운동장에서 리그 부활전을 개최하였다. 1954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팀이 출전하였고,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Gillett)가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에게 지도한 것이 그 시초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1900년 3월 대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소년야구단이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브루엔 선교사의 기록을 통해서 밝혀졌다. 따라서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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