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타임캡슐] 연날리기

속죄와 기복의 의미가 담겼던 전통 풍속
연싸움에서 터득한 패배와 와신상담의 시간

1983년 12월 20일 겨울방학을 맞은 본리초교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지금쯤 오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일 것이다. 매일신문DB
1983년 12월 20일 겨울방학을 맞은 본리초교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지금쯤 오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일 것이다. 매일신문DB

'대구시내 94개 국교가 20일 일제히 겨울방학을 시작,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로 설명된 1983년 12월 21일자 본지 사진이다. 본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1년 중 연날리기에 가장 적합한 때는 설과 정월대보름 사이였다. 연을 띄우면서 송액영복을 기원했다. 연날리기에는 속죄와 기복의 의미가 있었다. 음력 섣달그믐이면 지은 죄를 종이에 적어 짚 인형 속에 싸서 연에 매달아 띄웠다. 송사로 이어질 만큼 큰 죄는 아니었다. 주로 아이들의 반성문 수준이었다. 묵은해를 털자는 의미가 강했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다.

연날리기의 진면목은 공중묘기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스릴만큼은 연싸움에 비하지 못한다. 연을 서로 부딪치게 하거나 연줄을 서로 부비면서 연을 망가뜨리는 다소 파괴적 놀이였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도 소망적 사고가 하늘 끝까지 닿아 있던 어린 시절이다. 상대의 도전에 응하지 않으면 외려 겁쟁이란 낙인이 기다린다. 상대의 기예와 준비성을 한껏 치켜세워도 줄 세우기를 즐기는 상대는 꼭 있기 마련이었다. 물러서기도 애매한 외나무다리의 결투였다. 어느 하나의 연(鳶)은 주인과 연(緣)이 끊길 각오를 해야 했다.

졌을 때가 문제였다. 고통이 컸다. 패전에서 오는 슬픔도 슬픔이었지만 연을 주우러 가는 건 고난의 행군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연을 집어 들 때는 마치 전우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우는 전쟁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패배를 감수하는 과정이었다.

끊긴 연의 행방을 찾을 수 없을 땐 다시 연을 만들어야했기에 재기를 노리는 와신상담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요령의 시간이 시작된다. 깨진 사기그릇을 잘게 부수고 풀을 섞여 연줄에 바른다. 장인정신이 따로 없다. 그런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거라는 얘기도 추억담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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