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베트남 하노이 출장 중에 한 대기업 협력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2천여 명의 현지인과 10여 명의 한국 주재원이 근무하는 전자부품 조립 사업장이었다. 라인 투어 도중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 주재원에게 근황을 물었다.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베트남에 온 지는 5년 정도 되는데 퇴직할 때까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모기업이 생산량을 대폭 줄이고 베트남으로 거의 이전해 버린 터라 귀국하더라도 일할 자리가 없어서라고 했다. 법인장으로부터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듣고 나니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법인장의 이야기가 현재 근무 중인 주재원들이 퇴직하면 한국에서 올 인력이 더 이상 없어져 관련된 제조기술이나 노하우가 현지인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의 뿌리가 흔들리다 못해 무너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필자는 대기업 제조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제조 라인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완성되는지를 지켜봤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쌓아온 기술이 이제 우리 것이 아니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제조업의 공동화 우려는 어제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 과정을 통해 급격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고 많은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제기되었던 문제다. 당시에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국내 생산 비중이 줄어들어 제조업이 무너지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권토중래의 심정으로 이런 제안을 할까 한다.
우리나라에 모기업을 두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총생산 물량 중 최소 10% 이상은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외에서 근무하다 귀국해도 일자리가 있고 국내 제조 라인에서 새로운 생산기술을 연구하여 해외 법인에 공급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국내에서 양성된 인력들이 새로이 주재원으로 근무함으로써 해외 사업장의 생산성이 올라가게 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국내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 투자와 인력 양성이 활발해지는 선순환적인 사이클을 형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의 최대 강점인 제조기술이 해외로 넘어가지 않게 되고 기술 발전도 이루게 된다.
현재 해외로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약 300만 명의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10% 국내 생산의 원칙을 지켜준다면 30만 개에 달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10% 국내 생산으로 제조기술도 지키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제조업의 역할이 컸다.
경제의 뿌리인 제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이번 기회에 최소 10% 이상 국내 생산 의무화를 법제화하여 국가 경제,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방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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