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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텅장이어도 좋아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5월 달력은 빨갛다. 올해는 일요일이랑 겹쳐 덜하지만.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부처님오신날. 기념일 총출동이다.

주식 호가 창과 직장인은 빨간색이 많으면 좋지만 가계는 적신호가 켜지면 팍팍해진다. 시집 장가가는 사람도 많다. 필자는 딸 생일에 자동차 보험 갱신일도 5월이라 통장이 텅장(텅빈 통장)이란 말이 실감난다. 오죽하면 '메이(5월) 포비아(공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까.

그래도 이왕 쓰는 김에 만족한 지출을 하려니 선물 품목이 늘 고민이다. 여기저기 '잇템' '꿀이득' 등을 내세우며 고민을 덜어주는 척 마케팅들이다. 받는 사람의 심장을 저격할 선물 찾기가 쉽지 않다. 기념일마다 센스 있는 이벤트로 감동을 줬던 딸아이의 노력이 새삼 가상하다. 최근 몇 년간 뉴스 보도나 인터넷 매체의 설문자료 결과를 보면 어버이가 선호하는 부동의 선물 1위는 '현금'이었다. 반면 올해 빅데이터에는 어버이 날 싫은 선물 1위가 '책'으로 조사됐다. 어르신들은 돈을 쥐고 있어야 힘이 난다더니. 책 선물을 기피하는 것은 의외였지만 노안으로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선물이라는 것은 받으면 기분이 좋다. 값비싼 선물은 뇌물이 될 수 있지만 부담없는 선물은 새록새록 정을 만든다. 더군다나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은 감동이 배가 된다. 선물을 고를 때도 받는 사람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상상을 더한다.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늘 기분 좋게 산다는 말이 맞는 말 같다.

지난 달 '나훈아 콘서트' 티케팅을 부탁받아 시도했다가 4분만에 매진되는 바람에 실패한 일이 있었다. 관련 보도기사에 '엄마 미안해' 같은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한 효심이 빚은 티케팅 전쟁이었다. 콘서트 티켓을 선물하는 것도 훌륭하다. 이왕이면 우리 지역 예술인들과 관련된 거라면 더 좋겠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 손을 잡고 공연을 관람하거나 아트 투어는 어떨까? 어릴적 문화적 체험은 창의력과 감성지수를 팍팍 올려 줄 것이다.

가정의 달은 버겁긴 하다. 하지만 내 시계 속도보다 부모님 시계는 더 빨리 간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걸 부모님들도 아신다. 그래서 딱히 특별한 걸 원하지는 않는 느낌이다. 영화 어벤저스의 명대사 "3000만큼 사랑해"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충분할 지도 모른다. 거기에 보태어 함께 공연장을 찾아도 반기실 듯하다. 받고 싶은 선물이 용돈이라고 답한 부모들에게는 민망하지만. 고기는 금방 소화되고 돈은 어디론가 새어나가 버리지만 자식들과 함께 한 예술 작품의 감동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고마운 스승에게도, 부부와도. 어찌하다보니 늘 기승전 예술이다. 인생은 독한 술, 그래서 예술이라고 노래한 가수 싸이처럼 말이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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