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이면 보리 싹이 땅 위로 솟아오른다. 땅 아래에서 악전고투 끝에 기어이 고개를 내민 어린 싹인데 아이들은 발로 꾹꾹 밟는다. 야속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지만 어엿한 곡물 생산량 증대 기술이었다. 겨우내 들떠있던 흙을 눌러줘서 보리 뿌리가 잘 내리도록 돕는 한편 보리 싹이 웃자라는 것을 막아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대구 불로동에 살고 있는 최주원 씨의 타임캡슐이다. 1976년 경북 문경 호계면 막곡들에서 호계초등학교 학생들이 보기밟기에 나섰다. 당시 호계면사무소에서 농정 업무를 보던 최 씨는 농가에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을 듣고 급히 학교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사실상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민이 동원됐다. 학생뿐 아니라 군인, 공무원도 보리밟기에 나서야 했다. 보리 파종도 실은 재배 면적을 조사했을 정도로 국가가 주도했다.
1976년은 보릿고개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해다. 통일벼가 개발돼 쌀밥도 드물지 않게 보이던 때였다. 그러나 통일벼 쌀의 맛이 떨어져 일반벼 재배 농가를 단속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부는 농가에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 재배를 강권했기 때문이었다. 질보다 양이었다. 혼분식은 미덕을 넘어 도덕이었다. 쌀과 보리가 섞인 도시락을 학교에서 검사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10년 전까지, 1960년대 보릿고개로 고생했던 기억이 윗세대들에겐 남아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에 연출된 낌새가 없다. 신나서 밝다. 실제 학생들은 적극적이었다. 부드러워진 흙을 밟을 때 폭신폭신한 느낌이 좋아서였다. 요즘도 보리 재배 농가가 드물어서 그렇지 보리밟기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식량 확보 차원이 아닌 관광자원화를 위한 축제 형식 이벤트다. 격세지감이다.
※'타임캡슐'은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 역사가 있는 사진 등 소재에 제한이 없습니다. 사연이,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든 좋습니다. 짧은 사진 소개와 함께 사진(파일), 연락처를 본지 특집기획부(dokja@imaeil.com)로 보내주시면 채택해 지면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소개는 언제쯤, 어디쯤에서, 누군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사진 원본은 돌려드립니다. 문의=특집기획부 053)251-1580.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