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사랑과 의도

김계희 그림책 화가

김계희 서양 화가
김계희 서양 화가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특별히 안정감 있고 여유가 느껴지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은 밝고 낙천적이고 뇌가 건강한 느낌이 드는데, 학습에 있어서도 그런 아이들은 지구력 있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어머니를 만나보면 그 안정감이 어머니의 풍부하고 깊은 사랑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오랫동안의 교육 현장 경험으로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특이한 점은, 많은 아이들에게서 사랑에 대한 무언가의 결핍감이 느껴진다. 부모의 사랑이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닐 수 없고,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도와 보살핌은 예전보다 더 높아지고 섬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점점 더 많은 요구와 의도가 담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 오롯이 아이 자체가 아닌, 아이가 서 있는 그 뒤편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이 있음을 본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부모 자신의 욕망, 성취, 그런 소망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조바심과 불안이 혼합된 그야말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아이들이 결핍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영화 보기에 대한 장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특별히 선별한 영화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서정적인 내용의 좋은 영화였지만 그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지겨움을 토로했고 결국 영화 보기는 중단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화가 났다고 한다. 화가 난 이유는 영화를 선별하기 위해 공들여 노력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이었을 것이고, 아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영화 한 편을 보여주는 것에도 이처럼 복잡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부모님의 아이를 향한 많은 행위 속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대와 욕구 그리고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의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칭찬이, 이 격려가 어떤 요구를 품은 것임을 아는 아이들은 그 수많은 의도 속에서 피로해져 가고 있다.

피로가 축적되면 예민해지고, 예민함은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결국엔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무기력해진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NO를 선언하게 되는데, 집중력이 좋던 아이가 집중력이 흐려진다거나, 낙천적이던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한 성향으로 변한다거나, 그래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된다거나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정확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지 못해서 불안하고 피로한 것은 아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가는 아이에게 날아 보라고 등을 떠미는 사랑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온전하고 풍부한 사랑 속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을 딛고 아이는 결국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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