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냉정과 열정 사이

유광준 서울정경부 기자
유광준 서울정경부 기자

"정치 무대에선 삐치면 자기만 손해다. 잠시 선명함을 과시할 수 있지만, 그뿐이다. 다소 겸연쩍더라도 논의의 장에 비집고 들어가야 작은 이익이라도 챙길 수 있다. 최종 합의는 참석자 사이의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자리에 없는 사람까지 챙기는 인심은 적어도 '여의도'(정치권)에는 없다."

최근 만난 이상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촉구하며 한 말이다.

국회로 돌아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을 설명하고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을 설득하라는 취지다. 지금처럼 박차고 나간 자리에서 국회를 향해 손가락질만 해서는 원내 의석 113석의 제1야당이라도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는 훈수도 담겼다.

한국당을 보면 대구경북이 떠오른다.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공을 들이다가도 빈정이 상하면 '됐다, 치아뿌라. 나중에 어디 두고 보자'로 응수하기도 하는 곳이다.

협상장에서 손익을 계산하고 주고받기를 통해 지역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섬세한 시도는 '쭈글시럽다'거나 '쪼잔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봤다.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리는 세상인데도 '묻지 마 의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의 인공지진이 촉발한 것'이라는 정부 합동조사단의 결론이 나오자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다.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여론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후속 조치를 깔끔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에서 공무원은 법에 따라 움직인다. 포항지진 지원특별법을 만들어야 일이 풀린다. 청와대 청원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참여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포항지진 지원특별법을 다루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지역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예산을 아끼려는 정부와 '포항만 힘드냐'고 견제하는 타 지역 정치인을 어르고 달래며 실속을 챙겨야 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구경북이 남다른 열정으로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는 동안 충청 지역은 냉정함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선택과 투표'로 지역 이익을 지켰다. 세종특별자치시의 탄생 배경이다. 광주·전남도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며 호남을 잡아 놓은 물고기로 취급하던 민주당에 경종을 울렸다.

그칠 줄 모르는 적폐 논쟁과 경기 침체에 지친 지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심판론이 비등하자 지역의 정치 신인들이 대구 수성갑(김부겸)과 북을(홍의락)로 몰린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2022년 5월까지다. 별일 없으면 제21대 국회의원 임기의 절반은 민주당이 여당이다.

민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김부겸·홍의락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선수를 더하면 여당 대선주자와 상임위원장이 된다"며 "야당의 어떤 후보가 여당 대선주자와 상임위원장이 될 두 사람보다 지역 이익을 더 챙길 수 있을지에 대한 지역민의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지역 유권자들이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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