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내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계약서 살펴보니…

경비·청소 '직영' 걸어놓고 비용은 별도 협의, 인건비 외에 업체 이윤 또 들어가 있어
대구시 '불법 아니다' 근거 삼는 판례는 입찰 시 경비·청소비 명시… 근거 빈약

대구 시내 아파트 위탁관리업체들이 위탁관리계약에서 청소나 경비용역을 직영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따낸 뒤 별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계약 실태는 각 구·군 감사에서도 확인됐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시민 불만이 쌓이고 있다.

◆'직영' 계약했는데 인건비에다 업체 이윤까지 챙겨줘

지난 4월 대구시에는 공동주택 위탁관리업체 선정이 부당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니 입찰 이후 실제 계약형태를 살펴보고 관리감독을 강화해달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위탁관리업체가 일단 입찰로 계약을 따내고 추후에 입주자대표회의와 별도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많아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고, 입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 제기였다.

해당 민원인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공동주택 관리정보시스템(K-아파트)에 공개된 입찰정보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경비 혹은 청소 업무 직영을 조건으로 내건 아파트단지 48곳(3만5천여 가구)에 대해 이중계약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구시가 지난달까지 각 구·군을 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48개 단지 모두 경비·청소업무 전체나 일부를 직영 조건으로 입찰을 하고서도 추후 별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의 수의계약인 셈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연간 300만원 이상 용역계약을 맺으려면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이 같은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수성구 범어동 한 아파트의 계약서에는 최초 입찰에 없던 관리직 인건비와 청소비 3천100여만원이 추가됐다. 수성구 황금동 한 아파트도 지난 1월 맺은 위탁관리계약에서 입찰 당시 없던 미화직 인건비 1천592만원이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범어동 아파트의 청소비 항목에서는 인건비뿐 아니라 관리업체 이윤으로 잡히는 월 40만원 상당의 '제경비' 항목이 산출됐다. 황금동 아파트에서도 미화직 교육훈련비, 일반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매월 16만460원이 더해졌다. 관리업체 이윤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대구 한 아파트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찰에 명시되지 않았던 인건비는 그나마 당사자에게 지급되는 실비 성격이니 제외하더라도 제경비 등 명목으로 사실상 관리업체 이윤이 다시 잡히는 것은 문제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위법 근거 없다며 손 놓은 대구시

하지만 대구시와 각 구·군은 실태를 파악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문제 소지는 있지만 명확하게 위법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별도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대구시는 위법하다고 볼 수 없는 근거로 2012년 대법원까지 올라갔던 울산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해당 단지 주택관리업체에 대해 제기된 소송의 판결을 내세우고 있다. 2009년 공동주택 위탁관리계약을 체결한 이 아파트는 낙찰 업체와 경비 및 청소 업무를 직영 방식으로 하고 매월 112만원의 위탁관리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한 뒤 매월 84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경비 및 미화 업무에 관한 위수탁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이에 대해 한 입주민이 문제를 제기해 소송이 벌어졌다.

당시 1심과 2심 재판부는 "피고(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관리업체)가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과 경비·미화 업무에 관한 관리수수료를 별도로 지급하는 방식이 반드시 주택법이나 주택법시행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위 계약 체결 행위 자체가 위법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정했다. 대법원에서도 소액사건심판법에서 규정한 상고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며 상고를 기각해 2심 결과가 확정됐다.

언뜻 경비나 미화업무에 대한 별도 계약 체결이 합법이라는 판정 같지만 이 사례는 최근 대구시에서 만연하고 있는 계약행태와는 차이가 있다. 울산 사례의 경우 최초 입찰 당시 '위탁관리 수수료·경비·미화 용역비 및 운용계획서를 별도 밀봉해 제출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고, 낙찰업체의 전체 용역비가 가장 낮았다. 재판부도 이를 근거로 들며 해당 계약이 입주민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판결 근거로 명시했다.

이 같은 이중계약 관행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대구 한 구청 관계자는 "업체 선정과 관련해 잡음이 일면서 입주자대표회의에 왜 굳이 이런 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느냐고 물었지만 제대로 된 해명을 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본지 역시 지난달부터 다수의 입주자대표회의에 이 같은 계약을 맺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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