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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부끄러운 등

장정옥 소설가

장정옥 소설가
장정옥 소설가

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대 유벤투스 FC 친선경기가 치러졌다. 상암경기장을 가득 채운 축구팬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유벤투스는 한 시간이나 늦게 경기장에 나타났다. 마음 상한 팬들은 안중에도 없이 시합을 치렀지만 유벤투스 감독은 6만3천명의 축구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호날두를 끝내 시합에 뛰게 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나도록 팬들이 '호날두' 라고 연호를 외쳤지만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끝내 라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이 유벤투스를, 호날두를 그리도 도도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호날두가 K리그에서 뛰는 게 아까우면 처음부터 장삿속을 접고 초청경기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의 어처구니없는 횡포가 유벤투스 감독에게서 시작되었든, 호날두에게서 시작되었든, 유벤투스는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전혀 프로답지 못했고 스포츠인답지 못했다. 우리가 입은 상처도 적잖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보이고 간 부끄러운 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적어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운동선수라면, 그렇게 치욕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들의 부끄러운 등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일본은 수출규제로 그들 자신의 죄를 덮으려 갖은 수단을 다 쓰고, 북한은 형제의 따뜻한 손을 뿌리치는 것으로 우리의 부아를 돋우고 있다. 어릴 때 형제들이 싸우면 엄마가 우리 등을 후려치며 '너희들이라도 말을 좀 들어줘야 엄마가 덜 힘들지'하며 화를 내셨다. 지금 엄마의 그 매운 손맛이 간절하다. 한때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남편이 눕혀주고 일으켜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꾸만 의지가 꺾이는 자신에게 해준 위로의 말이 있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오른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세상에 나를 구할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나를 일으킬 생각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일으키지 못한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지도 않게 유벤투스까지 더하여 한국을 능멸하는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다행히 우리 국민들이 힘을 모아서 외세에 맞서고 있으니 이 또한 별고 없이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 역사 대대로 수많은 외세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이겨냈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 독립운동은 못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하며 응원은 해줄 수 있다. 힘들 때마다 나는 들판으로 가서 풀을 본다. 비바람이 모질게 흔들고 쓰러뜨리지만 풀은 매번 씩씩하게 일어선다. 비바람은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하지만, 풀은 가장 여리고 힘없는 모습으로 굳건하게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토착식물이다. 어느 누가 풀의 강한 근성을 이길 수 있으랴.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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