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러시아 화학자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1869년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여 유엔은 2019년을 화학원소주기율표의 해로 선포했다. 원소는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를 담은 주기율표는 온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표 하나에 모여 있다 해도 좋을 만큼 큰 의미를 갖는다.
표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내용을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따라 보기 좋게 나타낸 것이다. 표에는 가로줄과 세로줄이 있다. 행과 열이 만나는 곳에는 공간이 생긴다. 공간은 위아래와 왼쪽 그리고 오른쪽을 구분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을 표에 넣는 방법은 그들의 유사성을 찾아 분류할 기준을 만들어 범주화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지구상에서 발견된 원소는 63개였다. 원소의 상대적인 원자량을 알게 되자 여러 과학자들이 원소의 주기성에 관한 규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멘델레예프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원자량과 원소 특성을 적은 63개의 카드를 만들어 카드놀이 하듯 원소를 원자량 순서로 나열하되, 비슷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같은 줄에 위치하도록 배열해 보았다. 이는 그가 모든 원소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실험을 통해 정확히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표는 군데군데 채울 수 없는 빈칸을 남기게 되었다.
빈칸은 단순한 공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상과 추론의 칸이었다. 그는 빈칸에 들어갈 새로운 원소의 출현 가능성을 주장하며 그들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예측했다. 6년 후, 알루미늄(Al) 아래 빈칸에 그가 예견한 대로 새로운 원소 갈륨(Ga)이 추출되었고, 뒤이어 비어 있던 다른 원소들도 발견되었다.
제대로 만든 표는 확장성을 갖는다. 아래로 또 옆으로 덧대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멘델레예프를 최초의 주기율표를 만든 사람으로 기리는 이유는 그가 후대 연구자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확장 가능한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과학관에도 올해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어 전시하기로 했다. 평면적인 주기율표 대신 입체적인 표를 제작해 각 칸에 실물을 넣고 눈앞에서 원소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주기율표를 구성하는 118개 원소는 92개 정도만이 지구상에 존재하며 나머지는 핵반응을 통해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주기율표 실물 제작을 위해 지각에 존재하는 것 중 최대한 많은 수의 원소를 구해보기로 했다.
계획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틀을 만들고, 구획을 분류하고, 정보를 표기하는 원소전시대 제작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원소가 문제였다. 92개 실물 원소를 국내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원소 세트를 한꺼번에 해외에서 들여놓는 것은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고뇌의 흔적 없이 매끈하게 완성된 주기율표는 영혼을 담고 있지 않다. 주기율표를 완성하기 위해 헌신한 과학자들에 대한 예우는 더욱 아닐 것이다. 원소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우선 채워 넣고 나머지 빈칸은 의미를 새기며 메우기로 했다.
불화수소는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으로 떠올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원소화합물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꼭 필요한 불화수소(HF)는 형석이라는 불소염(CaF₂) 광물을 고온의 황산과 반응시켜 얻는다. 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용액이 악명 높은 불산이다. 불화수소에서 추출하는 불소(플루오린)는 노란색 기체이며 부족한 전자 하나를 채우기 위해 거의 모든 원소와 무차별적으로 결합해 전자를 빼앗는다. 불산에 노출되었을 때 위험한 이유도 불소가 체내 이온원소와 즉각 결합해 우리 몸의 대사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불소는 우리 뼈를 단단하게 하는 데 미량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을 추출하거나 다루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희생을 불러온 원소다.
원자번호 9번인 불소(F)가 들어갈 주기율표 17열 할로겐족의 첫 번째 빈칸은 형석으로 대체하여 채울 것이다. 비어 있는 것은 그것을 채우기 위한 과정을 통해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를 통해 얻게 되는 가치의 발견은 값진 소득이다. 비어 있는 원소는 비어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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