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34] 막걸리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예부터 막걸리를 대구의 술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대구사람들은 막걸리를 좋아하였다는 뜻이다. 밑술을 발효시킨 다음 체에다 뭉개 큰 술지게미를 걸러낸 술이 탁주다. 여기에다 물을 적당량 섞어 다시 한 번 자루나 체에 걸러내면 막걸리가 되는데, 알코올 도수가 6~8도를 넘지 않는다. 도수가 높지 않아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나 여성들도 마시기에 좋다. 또한 막걸리는 김치 파전 보쌈 같은 음식과 음식 궁합이 잘 맞는다. 주변의 다른 음식과 어우러질 때 제 맛을 내는 술이 막걸리다.

막걸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다. 궁핍했던 시절, 허름한 뒷골목 술집에서 마시던 술이기도 하다. 왕소금이나 멸치 따위의 간단한 안주로 대폿잔을 기울이며 울울한 심사를 달래곤 했었다. 또한 가난한 문인들이 피란살이의 시름을 달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었다. 그 시절 소문난 막걸리집이 많았다. '감나무집', '말대가리집' ,'도로메기집', '석류나무집'….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던 문패도 번지도 없는 허름한 술집들, 그곳에 가면 피란살이에 시달리던 문인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막걸리가 나이 든 사람들만의 술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즐겨 마시는 술이 되었다. 막걸리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있지만, 다양한 칵테일의 등장으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신이 무궁무진하다. 딸기 키위 포도 블루벨리 같은 과일이 빚어내는 빨강 노랑 보라 등 화려한 칵테일이 젊은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언뜻 보면 주스 같기도 와인 같기도 한데,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기고 있다.

막걸리는 자랑거리가 많은 술이다. 달콤 쌉쌀한 첫맛이나 톡 쏘는 뒷맛이 그저 그만이다. 세계의 어느 술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성 있는 술이다. 또한 맛이 진하지 않아 여러 음식과 궁합을 잘 맞출 수 있다. 그리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고, 효모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건강과 미용에 좋은 술이다. 그뿐 아니라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풍부한 이야기를 잘 활용하면 세련된 스토리텔링 마케팅도 가능하다.

나라 안팎에서 막걸리 열풍이 드세다. 값이 싸고 건강에 좋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막걸리를 찾고 있다. 심지어 여성들이나 외국인들까지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어떤 외국인은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다 보면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정에 취한다"고 하였다. 술은 문화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 술이 있다. 영국의 위스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일본의 청주가 대표적인 술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치고 양조산업을 육성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세계적인 명주로 손꼽히는 '보졸레 누보'도 처음부터 고급술은 아니었다. 이제 막걸리도 세계적인 명주로 육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식의 세계화와 더불어 막걸리 또한 한몫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