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노년에 접어드시자 하시던 일을 접으셨다. 동네에서 친구분의 부동산 중개소를 돕기로 하셨다. 당시는 복덕방이라 했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여름이면 사무실 앞 가로수 그늘 밑 평상 위에서 장기를 두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데 자주 마음이 상하여 퇴근하시곤 했다. 정치 의견이 달라 다투셨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연세에 다 고만고만한 의견을 가지셨는데 말이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출근을 그만하셨다. 건강하셨던 아버지는 다른 일을 찾으셨다. 거의 50년 전 일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절에 모인 가족 간에조차 정치 이야기는 금기어 일순위다. 정치 이야기는 부자 관계도 멀어지게 한다. 선진국에서는 대를 이어 같은 정당을 지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 한국 정치가와 정치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정치가들은 국론 분열의 원인이 서로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치구조적인 문제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십수 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 원인 통계에 의하면 2018년 자살로 숨진 사람은 1만3천670명으로 1년 전보다 9.7% 늘어났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은 26.6명으로 OECD 평균 11.5명의 두 배가 넘고,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등이다.
특히 노인일수록 자살률이 높았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을 보면 60대 32.9명에서 70대 48.9명, 80대 이상 69.8명으로 70대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늘었다. 노인 자살 이유는 1위가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다. 2014년 기준으로 노인들의 상대빈곤율은 우리나라 48.8%, 미국 21%, 독일 8.5%였다. OECD 평균 12.1%의 4배가 되는 수치다. 이 통계는 자살이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토록 오랜 시간 자살률 세계 1위를 한다면 집단적 원인, 구조적 원인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개인의 자살은 그 자체로 사회적 사건이요, 사회적 타살이 되는 것이다. 돈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비극이다. 이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은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자살'의 음절 순서를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국민의식도 뒤집어져야 살 만한 세상이 온다. 판을 뒤집어서 최소한 자살은 멈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살을 막는 방법은 상담사를 양성하는 것만이 아니다. 간암으로 열이 나는데 해열제 아스피린 처방이 될 말인가? 이와 같다. 자살 예방 대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면 누가 스스로 죽겠는가? 정치가 더 민주화되고, 경제가 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도, 능력이 좀 부족해도, 취업이 잘 안 되어도, 사업에 실패를 해도, 나이를 먹어도 극단으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총선이 다가온다. 그런데 왜 총선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한 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 우리는 선거가 정치의 전부인 양 여긴다. 어느 누구든 한 명은 반드시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이고 그 사람이 자기면 좋겠다고 출마한다. 완전 로또심리학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 혼자 잘 살자고 국민을 자살로 내몰지는 않을까? 자살이 정신과 의사의 몫이 아니고 정치가의 책임인 것을 아는 정치가, 국민의 자살을 멈출 정치가가 있다면 기꺼이 내 소중한 한 표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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