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하루가 밝았다. 연말연시는 명절과 함께 소외된 이들의 몸과 마음이 한결 더 쓸쓸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더욱이 하루 하루가 예전 같지 않은 어르신들이 홀로 지내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심정은 한층 외로울 수밖에 없다. OECD 노인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외로움'이다.
그래도 대구의 어르신들은 그나마 조금은 나은 편이다. 어르신들이 안고 사는 마음의 상처를 매만져줄 수 있는 노인전문상담기관이 2개나 있기 때문이다. 대구중구노인상담소와 수성구어르신상담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전국적으로 다른 지역에는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영등포구노인상담센터·경기노인종합상담센터가 있을 뿐이다.
어르신들이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노인상담기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살펴본다.
▶어르신 속내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곳!
박필순(82·가명) 할머니는 노인복지관에 와서 식사만 할뿐 하루종일 아무 말 없이 웅크리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다. 며칠을 지켜보던 복지관 할머니들이 살살 달래며 데리고 간 곳은 수성구어르신상담센터였다. 첫 날은 최은숙 상담사와 마주앉아 울기만 하다 돌아갔다.
두 번째 방문에서 말문이 터졌다. 사연은 이랬다. 그동안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아오다 고부갈등으로 인해 얼마 전부터 따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입장에선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세상과 단절했고, 복지관은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할머니의 하소연을 충분히 다 들은 뒤에 말씀 드렸습니다. '요즘 자식들과 함께 사는 어르신들 거의 없어요. 복지관의 다른 할머니들 대부분이 따로 사세요. 생각을 한 번 바꿔 보세요. 다른 할머니들과 이야기 하시다보면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실 거예요'"
올해 3월 개관한 수성구어르신상담센터(고산노인복지관 내 위치)를 맡은 최은숙 상담사는 복지관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분들을 위해 '친구만들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5명씩 한 조를 이뤄 매주 1회씩 '아트테라피' '독서토론' '버킷리스트 작성' 등 놀이와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듯 서로 말문이 열리고 친구가 된다. 지난 10월에는 수성구 관내 경로당을 돌며 '사는 기쁨'을 주제로 한 집단프로그램을 진행해 좋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나이가 들면서 위축되기 쉬운 자아존중감을 높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최 상담사는 "50명의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한 기초교육을 마쳤고, 노인전문 상담사가 1명 더 충원될 계획"이라면서 "2020년부터는 아버지학교(홀로 사시는 할아버지를 위한 요리교실)를 운영하고, '독거노인 안부전화' 및 '어르신 방문상담' 프로그램을 전문 자원봉사체제로 안착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건강한 사회활동이 노년을 행복하게 한다!
수성구어르신상담센터가 갓 출범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과정이라면 대구중구노인상담소(중구노인복지관 내 위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노인전문상담기관이다. 2007년 8월부터 대구중구청이 사회복지법인 운경복지재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역사 만큼이나 모범적 운영으로 명성이 높다. 올해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조직 구성도 상대적으로 탄탄한 편이다. 4명의 전임직원과 더불어 모두 13명의 운영위원과 자문위원이 있고, 무려 263명의 노인상담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70시간 이상 상담교육을 수료한 인원은 503명이고, 2년마다 모집하고 있는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의 경쟁률은 치열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 상담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기본교육 이외에 매년 5회 이상의 보수교육과 직무교육이 이어진다.
전화상담, 개인상담, 가족상담, 집단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화상담'은 자원봉사자들이 취약·소외계층 어르신들에게 정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는 것과 상담전공 직원이 전화로 걸려온 어르신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으로 나눠진다. '개인상담'이나 '가족상담'의 경우도 사안이 심각해 상담소를 내방하면 전문 상담사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집단상담'은 전문직원들은 주로 프로그램을 개발·교육하고, 전문성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이 경로당과 노인대학, 복지관 등 각종 노인시설을 찾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구중구노인상담소는 특히 노인대상 특성화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은 감정을 상대방을 용서함으로써 내면적인 평화와 정신적 건강을 되찾게 하는 '용서증진교육 및 용서집단상담프로그램' ▷동년배 노인상담사가 공감과 소통으로 진행하는 '독거노인 우울예방프로그램' ▷집단괴롭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갈등해결기술을 가르치는 '노인집단 괴롭힘 예방프로그램' ▷노년기 관계증진교육 ▷노인원예미술치료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강난미 대구중구노인상담소장은 "우리나라의 선도적인 노인전문상담기관으로서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문제를 파악해 심리보호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널리 보급·운영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어르신들이 모여 지내는 공동체에서 다름과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서로 간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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