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년 전 우리나라엔 전체 인구 수를 훌쩍 넘어서는 8천만 마리의 쥐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농사가 주업이었던 당시 쥐는 국가적인 골칫거리였다. 54년부터는 '전 국민 쥐잡기 운동'까지 벌일 정도였다니 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라따뚜이 등 긍정적으로 그려진 만화 속 이미지와는 달리 현실에서 쥐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사람들에게 쥐는 기피, 나아가 박멸 대상이거나 인간을 위한 실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올 해는 쥐의 해. 경자년이 아니던가. 쥐 구멍에도 볕들 날이 왔다. 퇴치·기피 대상으로서의 쥐가 아닌, 반려인에게 행복을 주는 반려동물로서의 쥐를 소개해 보려 한다. "햄스터와 비슷한 외모지만 수명은 10배 정도 길고(최대 20년까지 산다), 강아지처럼 주인과 교감이 가능하지만 짖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경산시 하양읍에 거주 중인 대학생 김민지 씨는 '친칠라 쥐'의 치명적인 매력에 푹 빠졌다.




◆온·습도에 예민하고 독립된 사육 공간은 필수
취재를 위해 민지씨 집 주소를 문자로 받고는 웃음이 픽 났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빌라' 끝에 붙은 첨언 때문이다. '친칠라 5층 빌라도 있으니 주의 요망' 원룸에 들어서자 민지 씨의 말이 100% 이해가 됐다. '사람 집이야 친칠라 집이야'' 5층짜리 길쭉한 케이지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잠시 층과 층을 우아하게 오고 가는 친칠라의 품위에 입이 떡 벌어졌다.
층간 소음 걱정도 없는지라 5층짜리 건물주 친칠라는 우당탕탕 대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주인은 원룸에 사는데 손님은 5층짜리 건물을 휘젓고 다니는 판이라니.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팝콘(기분 좋을 때 팝콘 튀기듯 뛰어오르는 것을 일컫는 용어)을 자주 튀기는 친칠라에게 층이 나눠져 있는 케이지는 필수다. 높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아파트 식으로 위로 높게 올라간 케이지를 마련해야 한다.
가구, 벽지, 나무, 플라스틱 보이는 족족 갉아 대는 친칠라의 특성도 값비싼 케이지 구매를 부추긴다. 독립된 사육 공간이 없다면 집은 아마 갈리고 갈리다 못해 가루가 되어 버렸을 것이라고. 학교 과제 용지를 갉아먹어 밤을 꼬박 새운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잠시 식탁에 올려놓은 오만 원짜리 몇 장이 누더기가 되기도 했다는 민지 씨의 하소연이 구구절절하다. "대부분의 갉아먹은 것들이 친칠라에겐 좋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생활공간은 필수다"
케이지의 위엄에 한 번 놀라고, 싸~한 실내 공기에 두 번 놀랐다. 온·습도에 예민한 친칠라 덕분(?)에 민지씨 집은 여름에 춥고 겨울에도 추운 기이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원래 친칠라는 고산지대 동물이라 기온이 낮은 곳에 살고 있다. 즉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최대한 보온하고 있다는 것. 그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면 호흡이 불규칙하게 변하며 식욕이 떨어지고 배에 가스가 차게 되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난방을 제대로 못 해 춥긴하지만 에어컨 요금에 시달리는 여름보단 겨울이 좋다는 민지 씨가 경량 패딩 옷깃을 여민다. 그의 친칠라 사랑이 지독하다 못해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부드러운 털 쓰다듬는 것 만으로 심적 안정
미야자키 하야오의 역작 '이웃집 토토로'를 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토토로의 배에 누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봤을 것이다. 숲속에서 만난 특별한 친구 '토토로'의 포근한 배 위에 엎드려 마음을 나누는 메이(여주인공)는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배까지 내어주진 않겠지만 토토로의 촉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친칠라가 바로 토토로의 실제 모델이기 때문. 태평스러운 눈동자, 파묻히고 싶은 푹신한 배, 귀까지 닿는 함박웃음. 그러고 보니 이 둘. 참 많이 닮았다.
"하루의 일과는 이 녀석들 엉덩이 만지는 걸로 마무리한다. 이보다 더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다" 모공 하나에 얇은 털이 100~300개 정도 나 있는 친칠라는 털이 매우 부드럽다. 쓰다듬는 것만으로 심적인 안정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미세하고 부드러운 털이 빽빽하게 나있는 덕분에 벼룩이나 기생충은 얼씬도 못 한다. 반려인의 도움을 받아 털을 슬쩍 쓰다듬었더니 친칠라가 움찔한다. 넌 움찔대, 난 만질게. 손이 간다 계속 간다. 하지만 부드러운 만큼 아주 얇아 공기 중에 쉽게 떠다닌다. 그래서 비염이 있는 반려인이라면 입양 전 깊은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화 기관 좋지 않아 '똥싸개' 별칭의 주인공
결기를 다지는 한국인에게 삼보일배가 있다면 친칠라에겐 삼보일똥(?)의 고약한 버릇이 있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고행 대신 세 걸음 걷고 한번 싸는 배출의 기쁨이라니. 이는 장이 짧고 괄약근이 없는 친칠라의 소화 기관 특성 때문이다.
간혹 침대에 올라와 이불 속을 잠깐 다녀간 날이면 똥이 한주먹씩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동물들처럼 묽거나 질어 묻거나 치우기 힘들지 않다는 점.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 손으로 툴툴 털어내면 된다. 양이 많다는 것 외에는 치우는데 비위가 상하거나 번거롭지 않다.
'똥싸개' 친칠라는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꾸르륵대는 장트러블러 현대인의 비애가 친칠라에게서 언뜻 내비친다. 친칠라는 장이 좋지 않은 동물이기 때문에 건조된 것들만 소화시킬 수 있다. 건초와 펠렛(친칠라 전용 사료)이 주식이고 간식으론 여러 가지 잎 종류를 먹는다. 특식도 아주 가끔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말린 건사과를 손톱만큼 급여한다. 너무 잦은 간식 섭취나 잘못된 음식 섭취는 배에 가스가 차서 병에 걸리거나 급사할 수 있다. 쥐 하면 아몬드나 잡곡류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친칠라에겐 소화 안 되는 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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