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화가 장경국

장경국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클레이드로잉 작업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웃고 있다.
장경국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클레이드로잉 작업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웃고 있다.
장경국 작
장경국 작 'performer'(술래잡기)

내성적 성격에 차분한 말투를 지닌 화가 장경국(54)은 고교 때 붓과 인연을 맺은 이래 자신의 실존적 존재성과 타자 및 사회적 관계의 불편함을 오로지 그림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노력하는 작가다.

2017년 어렵사리 마련한 보금자리이자 그의 화실이 있는 대구시 동구 중대동 팔공산 자락 파계사집단시설지구. 화실에 들자 그가 현재 작업 중인 대형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아 흙으로 빚은 부조작품처럼 느껴져 가까이 갔더니 웬걸 천에 그려진 엄연한 평면회화작품이다. 착시현상을 일으킬 만큼 색과 명암처리가 탁월했다.

대구토박이인 장경국은 영남대 회화과(86학번)를 나왔다. 청소년 시절부터 철학과 문학 책을 많이 읽고 대학 때는 사회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대학시절 나는 그림 외에는 다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아웃사이더로서 그 흔한 MT도 한 번 간 적이 없죠. 원래 성격이 틀에 가두어지는 것을 거부했고 주변인들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 했습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본래의 예술분야는 조각이었다. 그런데 고교시절 미술학원장이 재능이 있으니 그림을 권해 회화과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아직도 조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장경국은 단체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단체전을 계기로 화가로서의 자신이 무척 못마땅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작품 활동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 작가는 전시가 끝나자마자 전시관 뒤에서 자신의 작품을 폐기해버리게 된다. 마치 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은 모조리 깨뜨려 버리듯이 말이다. 그 이후 전시하자고 연락이 와도 그는 "안 한다"고 답함으로서 점차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됐다. 장경국을 일컬어 '은둔의 작가'로 지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되는 데뷔전은 화가인 부인 유제비 씨의 권유로 2007년 대구에서 '올해의 청년 작가전'에 작품을 선보이게 되면서부터다.

그렇다고 은둔의 세월 동안 그림과 멀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기간 13년 동안 그는 자신의 실존적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그림에 더 몰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작가의 작품들이 다름 아닌 풍경과 정물화를 포함한 '인물화'와 조소에 대한 향수의 표출인 '클레이 드로잉'(Clay Drawing)이다.

인간 삶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이며 때론 천진난만한 모습과 때론 고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그의 인물화는 실존과 자아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며 풍경과 정물화는 자연적 대상과의 교감을 통한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폭넓은 독서는 어떤 면에서 화가에게 큰 자산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독(毒)으로 작용한 것 같았습니다. 흔히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삶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책은 사유의 길잡이는 될지언정 화가로서 제 삶에 대한 정체성 확립에는 구속으로 다가오면서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런 자각을 얻자 이후부터 더 철두철미하게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은 모두 폐기한다는 각오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오로지 유화에만 매달리면서 말이다. 그림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수행이었다. 이 때문에 장경국의 화실에는 그의 작품 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박스 안 웅크리고 앉은 남자를 그린 '화가의 방', 아빠 어깨 위에 올라탄 딸을 그린 '가족', 등에 부처처럼 보이는 사람을 업고 있는 '낙타의 등'과 같은 인물화는 저마다 실존적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새장 안 소년과 참새를 그린 '몽상'은 무언가 속박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이내 그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순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이다. 더불어 인물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실제인물의 묘사가 아니다. 전부 작가의 머릿속 이미지의 묘사로, 다른 한편으론 인간 장경국의 자화상들인 셈이다.

"나는 현재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듯 캔버스 위를 붓으로 더듬고 할퀴고 긋습니다. 그럴 때면 어렴풋이 한 인간이 보이는 데 허구의 인물입니다. 어쩌면 제 자신일 때도 있죠. 그러나 그 허구의 인물이 관객들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얻어 실제 인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클레이 드로잉'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몸으로 그리는 작품'이다. 찰흙으로 작은 네모 틀을 만든 다음 일단 그 표면에 드로잉을 하고 직접 손으로 조소형태의 밑그림을 만들면 이를 바탕으로 캔버스에 다시 붓질을 하며 명암과 색감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게 '클레이 드로잉'이다.

'인물화'는 붓이라는 매개를 거쳐 작품화되지만 '클레이 드로잉'은 손으로 주물럭거리는 1차 작업이 선행되기에 훨씬 작가 자신에게 체험적인 작업이다.

세상살이에 불편했던 작가가 긴 칩거를 끝내고 세상을 향해 자기 정체성 확인과 소통의 손짓을 꺼내든 건 2019년 서울서 연 '장경국의 오프스테이지'(Offstage)전과 이어 대구 동원화랑에서 연 '장경국의 온스테이지'(Onstage)전이다. 생애 두 번째 개인전이었다.

장경국에게 있어 그림은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작가는 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내면에 침잠했던 작가적 마음가짐이 세상을 향해 살짝 문을 열 기회가 됐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평면과 조소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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