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출동] 나? 경상도 남자! '양산' 쓰고 동성로 다녀보니…

'더위극복에 남녀 있나요' 시민들 대부분 개의치 않아…남성들 "쑥쓰럽다" 반응
대구시 올여름 폭염대책으로 '양심양산' 대여 서비스 계획, 남녀 인식 개선 캠페인도 예정

지난 9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약령시 인근. 스마트폰 날씨 알림창이 현재 체감 기온 39.6℃를 가리켰다. 올해 최고 낮 기온을 예상치 못했다는 듯 외출한 시민들의 표정도 무척 당황스러워 보였다.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은 손으로 뙤약볕을 가린 채 황급히 거리를 지나가거나, 아예 남방을 벗어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타는 듯한 더위에 양산이나 우산을 꺼내든 여성 보행자들이 많이 보였지만 남성 보행자들 중 양산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상청이 올여름 역대급 폭염 예고를 한 가운데 대구시가 양산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시는 이달 중으로 1천500여 개의 양산을 도시철도 3호선 역사 3곳과 동성로, 도심 관광지·공원 등에서 대여해주는 '양심 양산' 운동을 추진한다.

동시에 '남녀 구분없이 양산쓰기 일상화'라는 주제로 인식 개선 캠페인도 준비 중이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물놀이장과 쿨링 포그, 경로당, 복지관 등 실내 무더위 쉼터 운영이 여의치 않자 양산을 대체제로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시가 나서서 인식 개선 캠페인을 계획할 정도로 양산은 남성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남자가 한 여름 양산을 쓰고 대구의 번화가를 거닌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과연 이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불편함 뿐일까. 이에 매일신문 디지털국이 양산을 쓰고 거리로 나가봤다.

(※해당 영상은 '남성의 양산 이용' 관련 다양한 연령대의 대구시민의 반응을 살피고자 마련됐으며 영상 속 인터뷰는 사전 양해 및 허가를 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영상 속에 나오시는 시민들 중 의도치 않게 불쾌감을 드렸다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더위 피하는 것에는 남녀가 없어' 대구 남자는 여전히 "부끄러워"

결론부터 말하면 대구시민은 겉으로는 양산 쓴 남자를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사실 무관심했다. 이날 이용한 양산은 물방울 무늬에 무지개색이 가미 돼 기존 우산과도 확연히 달랐지만, 양산을 쓴 기자에게 이상한 눈길을 준 시민은 드물었다.

대학 교재를 든 여대생 한 명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지나 간 것이 거의 유일했지만 이마저도 호기심이 강한 눈치였다. 어딘가 부끄러웠던 기자 역시 곧 자연스럽게 양산을 쓰고 다닐 수 있었다.

양산을 쓴 남자를 본 적이 없다는 시민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성의 양산 이용 관련 호감도를 묻자 남녀 간 의견이 명확히 나뉘었다. 여성들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긍정적인 반응이 컸다. 이날 약령시에서 만난 A(74) 씨는 "이렇게 햇볕이 쨍하게 내리쬘 때는 남자도 양산을 쓰면 좋다"며 "요즘 옷도 남자 여자가 없는데 더위를 피하는 것에 남녀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B(14) 양은 "양산을 쓰는 거에 성별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요즘은 남성도 화려한 옷을 입으시는 분들이 많다"며 "그런 것처럼 양산을 화려한 걸 써도 그냥 패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사이에서는 '괜찮다'와는 반응과 '볼썽사납다'는 의견 등 호불호가 갈렸다. 중·장년층 이상은 부끄럽다는 반응이 컸고 청년층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응이 이어졌다.

B(59) 씨는 "(양산이) 남성보다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니 만약 남자가 양산을 쓰고 다니게 되면 '남자가 뭐 저런 걸 쓰고 다닐까'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C(26) 씨는 "나는 휴대하기가 귀찮을 것 같아 써본 적은 없지만 남자가 양산을 쓰고 다닌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 양산이 실제로 온도 낮춰줘 '온열질환' 예방

기자가 생애 처음으로 양산을 이용 해보니 햇빛을 차단하는 차양 기능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휴대용 선풍기도 아닌 얇은 양산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눈과 피부 등에 직접적인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점이 좋았다.

기자는 특히 탈모를 앓고 있어 여름철 현장 취재 시 1시간 이상 햇볕을 쬐기만 해도 두피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진다. 양산 덕분인지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세 시간을 걸어도 별 탈이 없었다. 신세계였다. 양산을 써도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양산 없이 걸을 때는 얼굴을 중심으로 팥죽땀을 흘렸었다. 이날 양산을 착용하니 확연히 땀이 적어져 적어도 양산 안 기온은 내려갔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양산 이용이 온열질환을 막아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구에서는 정응호 계명대 환경계획학과 교수가 지난해 7월 연구가 대표적이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쯤 아스팔트 위에 선 사람의 머리 부분 표면온도 변화를 열화상 카메라로 측정했더니 아스팔트 위에 선 지 1분 만에 표면온도는 약 45℃에 이르고 2분이 지나자 약 55도까지 육박한 것. 이후 실험자가 양산을 쓰자 1분 만에 표면온도가 35도 밑으로 떨어졌다.

정 교수는 "양산은 여름철 햇빛으로부터 몸을 지켜 온열질환 예방책이 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거리도 확보해줘 생활 속 거리두기에도 효과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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