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힐링&여행] 전남 보성 녹차밭

초록의 양탄자를 깔아놓은듯 곡선의 녹차밭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초록의 양탄자를 깔아놓은듯 곡선의 녹차밭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전남 보성에 있는 녹차 밭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2시에 길을 나섰다. 예전 시간으로 따지면 4경초에 일어나서 4경 중반에 길을 나선 샘이다. 파루가 울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수라꾼들이 수라를 도는 한양의 저자거리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은 시간대지만 도심의 야밤은 한낮을 방불케 하듯 가로등이 훤하다. 구불구불 초록의 보성 녹차밭을 가슴에 새기며 길을 나선다.

◆연두빛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한 녹차밭

목적지인 대한다원은 1957년 대한다업 장영섭 회장이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차밭과 그 주변의 임야를 함께 인수하여 대한다업(주)를 설립, 활성산(해발350m)자락과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대단위 차밭을 조성한데서 비롯되었다. 주위로 삼나무, 편백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등 300여만 그루의 관상수를 조림하였고 170여만 평의 면적 중 50여만 평에 약 580여만 그루의 차나무를 식재하였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재는 연두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다운 다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1973년에는 정부로부터 그동안 농가소득증대에 기여한 점과 지역경제개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주변관광지로는 10분 거리의 율포해수욕장과 고흥 나로도 우주센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소록도, 낙안읍성, 보길도, 송광사, 선암사, 운주사, 도곡온천, 등이 있어서 연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섬진강휴게소에 들려서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이 길을 재촉하여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경, 곧장 해가 떠오를 시간대지만 사위는 약간의 안개와 미세먼지 등등으로 인해 여전히 밤기운이 진득하게 눌러 붙어 있다. 편백나무가 시립하듯 늘어선 입구를 지나자 곧장 매표소다. 새벽임에도 불구 매표소는 방문객을 맞아 불을 밝히고 있다. 입장료는 성인 1인당 4천원으로 표를 끊어 통과하자 새벽잠에 취한 카페 등이 나타난다.

여행객들이 녹차밭에서 어린 아이처럼 뛰놀고 있다.
여행객들이 녹차밭에서 어린 아이처럼 뛰놀고 있다.

◆새벽을 여는 여행객

이곳의 구경을 잠시 뒤로 미루고 조금 걷자 직선으로 뻗은 나무계단 양편으로 신천지 같은 차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녹색을 흠씬 품은 공기가 가래가 낀 듯 킁킁거리던 콧구멍을 큼직한 코딱지를 후벼낸 듯 시원하게 뚫어온다.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며 쳐다보는 벼랑이 아찔하여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힌다. 저 위를 어떻게 오를까 싶은데 벌써 차밭의 우듬지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꽤나 오가고 있다. 우리일행도 부지런을 떨었지만 새벽을 일깨워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미리들은 정보대로 임도 중간쯤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그냥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서 오르는 것이 정 코스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좌측으로 접어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확한 찻잎을 나르는 모노레일이 산 위쪽으로 길게 늘어진 옆으로 차밭머리와 연계하여 산짐승이 다닌 듯 소로의 입구에 "길 없음"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그때 돌아서도 늦지 않았지만 앞선 일행이 네발로 기듯 산을 오르고 있다.

관광객들이 녹차밭을 산책하고 있다.차밭의 향기와 초록은 일상의 일들을 잠시내려 놓게 만든다.
관광객들이 녹차밭을 산책하고 있다.차밭의 향기와 초록은 일상의 일들을 잠시내려 놓게 만든다.

◆녹차밭 위로 떠오른 황홀한 일출

짐승과 더불어 사람이 다닌 흔적을 오르는 길이지만 가파르기가 코에 닿을 듯하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등산로에 코재란 고개가 있다. 산을 오르는 중에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팔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방이라도 산봉우리를 벗어난 태양이 방긋 웃을 것 같아 바쁜 마음도 한몫 거든 모양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꾸역꾸역 오르는데 "야~ 해가 뜬다."는 환희에 찬 목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안개와 미세먼지를 밀어낸 태양은 산봉우리를 한참이나 벗어나 희미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삼각대를 펼치지만 녹차의 이파리 사이사이로는 아직도 한밤의 여운이 찐득하게 깔려 있다. 한참이나 부산을 떨다 장비를 정리하여 본래의 포인트로 접어들자 한층 높이 치솟은 태양은 찻잎 위에서 사금파리를 흩뿌린 듯 반짝인다.

녹색은 청색과 황색이 겹쳐진 색이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가시광선 한가운데 있는 녹색은 흥분된 사람을 진정시킬 정도로 이로운 색이다. 볼 때마다 눈은 시원하고 기분은 상큼해지는 색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늘 상 보는 색이라면 회색빛 아파트와 희뿌연 매연과 뒤섞인 미세먼지, 눈이 부실 듯 뽀얀 색의 종이와 번쩍거리는 컴퓨터 화면, 규칙적으로 깜박거리는 커서 등으로 인해 눈은 늘 피곤에 절어서 산다.

녹색융단을 깔아 놓은 듯 산비탈의 녹차밭
녹색융단을 깔아 놓은 듯 산비탈의 녹차밭

◆세상의 시름을 잃게하는 초록의 녹차밭

가끔씩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르고, 한층 뻑뻑해진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다보면 모래알갱이라도 듣듯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자연이 아낌없이 내어주는 녹색이 특효약인 것이다. 우듬지에 서서 내려다보자 발밑으로 펼쳐지는 녹차 밭이 장쾌하고 넓어서 시야가 온통 푸름 일색이다. 모처럼 나를 위해서 오롯이 투자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사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경사진 산비탈을 녹색융단으로 덮은 듯 드넓은 광장을 껑충껑충 노루가 뛰고 토끼가 오물오물 입을 놀려 배를 채워 노닐 듯 여유로움에 젖다보니 어느새 태양은 중천으로 치 닿는다. 그제야 확연하게 들어난 차밭의 이랑이 흡사 능구렁이가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는 듯하다. 문득 어릴 적 독사에 물려 사경을 헤매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섬찟 했지만 그것도 잠시, 녹색바다를 헤치며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보약을 한재 먹은 듯 물 찬 제비 같다.

대한다업의 녹차밭.
대한다업의 녹차밭.

◆녹차의 효능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茶葉)을 사용해서 만든 차를 말한다. 녹차의 효능으로 대표적인 것은 머리를 맑게 하고 체중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을 보면 첫째, 찻잎을 딴 후 수분 함량을 줄이기 위해 2~3시간 정도 말린 뒤 선별한다. 둘째, 찌거나 덖는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잎의 산화효소 활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폴리페놀의 산화효소를 방지함으로써 적절한 색깔, 냄새 및 맛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향을 풍부하게하고 녹차의 형성을 촉진시킨다. 넷째, 비빔을 통해 찻잎에 임의적으로 생체기를 내며 건조를 위해 모양을 단단하게 만들며 차의 품질을 높인다.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우롱차 등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했다면 근래에 와서는 증열기, 조유기(粗揉機), 유염기(揉捻機), 재건기(再乾機), 정유기(精揉機), 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 한다.

녹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이후 아시아의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 봄 첫 수확한 것을 참새의 혀를 닮았다하여 작설차, 곡우 이전에 딴 것을 우전차 등으로 나누어 상등품으로 치고 있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편집위원 lwons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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