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강병덕 씨의 모친 故 김영애 씨

1989년 4월 23일 강병덕씨가 근무하던 호텔에서 열린 모친 김영애(오른쪽)씨의 회갑연 모습. 본인제공.
1989년 4월 23일 강병덕씨가 근무하던 호텔에서 열린 모친 김영애(오른쪽)씨의 회갑연 모습. 본인제공.

어무이는 1·4후퇴때 평양에서 피난 내려와 인천·부산·경주를 거쳐 대구 파티마병원 앞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구멍가게를 하며 3형제를 키우셨다.
어릴적에 부산 초량이 고향인 형을 데리고 부산에 사시는 이북 고향분을 만나러 나와 함께 가끔 다녀왔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범물동 천주교 묘원에 모셨다. 그땐 범물동까지 버스 차편이 하루 몇 대 밖에 되지 않아 수성못에서 논, 밭길을 따라 범물동까지 걸어 들어가야 할때도 있었다.
아직도 어릴적 배고플때 간장과 새우젓으로 많이 먹지 못하게 짭게 간하고 부뚜막 연탄 두꺼비판위에 남비를 올려 만든 계란찜과 엄니는 여름철이면 동치미 국물에 겨울무를 썰어 참기름 몇방울에 깨가루를 넣고 밥말아 주면 한 입 가득 우거적 거리며 먹는 감칠맛의 기억... 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는 전율의 맛. 생각만해도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추억이 아련하다.
어무이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먹어 보았지만 그 맛을 재현 할 수 없으니 지금은 추억의 맛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IMF때 직장을 그만두고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애들이 취업하던 시기에 시장을 떠나 장례지도사를 직업으로 선택해 늦깍기로 명복공원에 입사했다.
어무이가 돌아 가시기 몇년 전 시장에서 장사할 때 난 심장승모판 판막 수술에다 애들 키우느라 내 앞가림도 못하니 어무이도 사정을 아시고 날 멀리하며 부담을 주기 싫었는지 멀어져 갔다. 왜 날 나으셨냐고 한탄하며 전형적으로 불효자가 되어가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후에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선천성이 아니라 잇몸병이나 편도질환이 혈관을 타고 심내막염을 일으켜 판막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엔 병원을 가지못해 항생제 등 약처방이 안될때 발생된다고 했다.

어무이는 안동에 있는 동생집으로 가 있었다. 재수씨가 병원 수간호사라 아무래도 의료 도움이 많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말은 못했지만 동생 내외도 어무이 때문에 조금은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안동에서 동생 내외의 도움을 받으며 몇 번의 고비를 넘나들다 어무이는 88세에 돌아가셨다.
나 또한 동생 내외를 생각하면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대구로 모셔와 명복공원에서 화장해 직접 수골해 모셨다.
그후 남은 인생 조용히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가슴을 절개하며 아파보았기에 건강해야 생각되로 움직일 수 있으니 지금처럼 건강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훗날 어무이를 저승에서 만나면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용서를 빌어야 겠다.

사랑하는 어무이(김영애)의 아들(강병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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