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기민당을 보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독일의 기독민주당(CDU)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보수 정당이지만 스스로 보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보수주의를 실천하고 좌파의 어젠다까지 선점하여 오히려 좌파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1964년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건너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독일 정치계, 학계와 두루 교류해온 대표적인 독일통이다. 그는 독일 기민당이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인정하고 정책 수정을 꾀했듯이 통합당도 성장주의 일색의 가치에서 벗어나 좌클릭 행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김 위원장은 비대위 체제 출범 직후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기본소득을 화두로 꺼내드는 한편, 청년 정치 활성화 및 당 싱크탱크 개혁에 적극 나서는 등 기민당을 롤모델로 삼는 모습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기민당을 살펴보면 지금 통합당이 걷고 있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민당의 청년정치 조직 '영 유니온'
통합당은 당의 취약 지점인 청년 정치인 육성을 위해 독일 기민당의 '영 유니온'(JU)을 참조하고 있다.
독일 청년 정치의 산실로 불리는 영 유니온은 기민당과 자매정당인 기사당(CSU)의 청년 정치 조직으로서 14~35세 청년 당원으로만 구성돼 있다.
독일 전역에서 12만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전당대회를 열어 자체 지도부를 선출한다. 아울러 '역할을 통한 배움'(learning by doing)을 모토로 정당행사와 토론회 등을 일종의 놀이처럼 운영하며 착실하게 정치 경험을 쌓는다.
이들은 중앙당 지도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 등 현실 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과 유럽통합의 설계자인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영 유니온 출신이다.
통합당도 지난달 만 33세의 김재섭 비상대책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청년조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특위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곽관용·김준호·김지혜·박결·박준수·우종혁·이경희·이재빈·천하람·한동엽 등 청년정치인, 직장인, 대학생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위원 11명으로 구성됐다.

청년조직특위가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한국형 영 유니온' 설립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청년조직특위는 당내 청년기구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내부조직 강화와 청년정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특히 청년당원 재조직 및 외연 확장, 혁신적 정책의제 발굴 등을 위해 ▷위업(WeUp, 偉業) 프로젝트 ▷청년정책 클라우드 펀딩 등을 중점 추진할 전망이다.
◆통합당 재건 롤모델,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김 위원장은 기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을 롤모델로 삼아 여의도연구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이른바 '아데나워 프로젝트'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1964년 발족한 기민당의 정치재단으로 서독 초대총리를 지낸 콘라드 아데나워의 이름을 땄다.
본부는 본과 베를린 두 곳에 있다. 본부에는 각각의 중앙교육센터가 있고 특히 베를린 본부에는 재단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행사장 '아카데미'가 개설되어 있다. 독일 국내에만 21개의 교육지부가 있고, 세계 120개국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여의도연구원을 아데나워 재단처럼 글로벌 수준으로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아데나워 재단이 4차 산업혁명 등 보수진영의 장기적 정책 이슈와 비전을 선도적으로 발굴하듯 여의도연구원도 이러한 역할을 할 조직과 인력을 '고품격 싱크탱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지난 6월 슈테판 잠제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을 만나 여의도연구원 개혁 방안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슈테판 소장은 "아데나워 재단은 플랫폼 역할을 한다. 특히 기민당의 많은 정치인이 우리 재단을 통해 한국에 와서 SNS나 미디어 등을 활용하는 여러 경험들을 하고 있다. 반대로 재단은 독일 경험과 사례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여의도연구원을 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삼는 데에는 지난 4·15 총선 참패가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여의도연구원은 1995년 민주자유당 시절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정당정책 연구기관으로 정책 발굴과 여론조사, 선거 판세 분석 등을 담당하며 한국 보수당의 핵심 조직으로 위상이 높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당 대표의 사조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고 특히 지난 4·15 총선에선 판세 분석까지 실패하며 총선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지상욱 전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하며 여연 조직 개편을 비롯한 전면적 개혁을 주문했다.

◆'좌클릭'으로 재집권한 기민당…통합당은?
1998년 정권을 내준 기민당은 2005년 사민당(SPD)과의 '좌우 대연정'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사민당은 유럽 사회주의 좌파진영을 이끌어온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좌파정당이다.
최근 통합당도 개혁의 바이블이 될 새 정강정책 초안을 공개했다.
▷기본소득 ▷경제민주화 ▷복지사각지대 해소 ▷저탄소 청정에너지 혁명 ▷양성평등사회의 실질적 구현 등 그동안 진보진영의 화두였던 시대정신들을 모두 담아냈다.
또 피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내리고 청년 정치가 가능한 토대를 마련토록 했다. 또 당내 반발에도 4선 연임 제한을 명시해 '기득권 내려놓기'를 실천했다.
이와 함께 최근 통합당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추월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면서 통합당의 정권교체 시기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장밋빛 전망마저 나온다.
하지만 이를 김 위원장의 '기민당 따라하기'의 효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지지율 상승은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헛발질'에 기인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탓이다.
아울러 한국형 기민당 모델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존속하는 한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기민당 모델이 쉽사리 이식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총선 참패 이후 당의 기초체력이 빈약해진 상태에서 기존에 익숙지 않은 기민당 모델의 접목이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수라는 말 자체는 아무런 소용없는 허명이다. 거기에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떻게 실천하는지가 중요하다"던 김 위원장의 개혁이 지금부터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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