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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책]헤라클레이토스의 불/ 에르빈 샤르가프 지음·이원웅 옮김/ 달팽이출판 펴냄

지은이는 1940년대 후반 '샤르가프의 법칙'을 발표해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세웠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책은 생화학의 확립과 분자생물학의 탄생이라는 극적인 시기를 살아온 샤르가프의 전기적 에세이로, 풍부한 인문교양을 바탕으로 현대과학이 가져온 인간 존엄성의 심각한 훼손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담고 있다.

현대과학은 성과를 내기에 급급해 그 과정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 목적 또한 매우 불순하거나 비인간적인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는 그 대표적인 예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를 꼽는다. 샤르가프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두 단어만 들어도 극심한 공포감과 함께 인류 본성의 종말을 보는 듯한 묵시록적 세계관과 다르지 않는 시각을 갖게 됐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는 현대 과학이 끊임없이 '죽음의 과학'으로 질주하고 있으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에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옳고 정당하다고 여겼던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태도에 대해 되돌아보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과학에서의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조명을 받은 어둠은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굴 안에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시죠. 그러면 자신이 단지 헛간 같은 곳에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무엇을 발견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 해도, 저는 그것을 발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확실성은 삶의 소금입니다."(본문 186쪽)

여기서 샤르가프는 인간적인 얼굴을 한 과학을 뜻하는 '작은 과학', 즉 한 개인이 옹호하거나 지지할 수 있고 여전히 인간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과학을 주창하고 있다.

"인간은 신비 없이는 살 수 없다. 위대한 과학적 기술적 업적이 인간과 현실의 접촉점을 불가역적으로 상실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나는 오해를 받을까?"

샤르가프의 독백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면 독자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38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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