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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이런 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이 애국자다

11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11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2020 대구경북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코로나 극복, 중소기업의 협력으로'를 주제로 중소기업중앙회 대구경북지역본부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4개 기업 대표를 비롯해 30여 명의 중소기업인들이 참석해 유공 표창을 받았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표방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암덩어리'에 비유하며 과감하게 걷어낼 것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더 좋은 기업투자 환경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너도나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쳤지만 그리 되지는 않았다. 규제를 줄이지 못한 탓이 컸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어떤 나라인가. 노무현 전대통령은 이를 "뭐니 뭐니 해도 시장이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라고 정의했다. 이를 위해 정부의 '합리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합리적 개입은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를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인 이유가 가장 잘 살아서가 아니라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나라는 규제 대국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넘쳐나다보니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OECD국가 가운데 파업 중 대체근로를 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전경련은 기업 500곳을 상대로 규제개혁 체감도를 조사해 기업들의 규제개혁 체감지수가 올들어 더 악화됐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31개사는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사업이 힘들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사업이 우리나라에서 안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차량 공유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사업을 접은 '타다'가 대표적인 경우다.

기업하기 안 좋은 나라라는 조짐은 차고 넘친다.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기업은 줄을 잇는데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은 줄어드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2017년 552개던 대기업의 해외이전은 지난해 591개로 늘었다. 중소기업의 해외이전은 1천834개에서 2천56개로 증가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버리고 안 좋은 나라를 택할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지난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까지 만들었지만 이후 돌아온 기업은 80개에 불과했다. 떠나는 기업에 비해 돌아오는 기업이 턱없이 적다. 정부가 아무리 '리쇼어링'을 외쳐도 돌아오지 않고, 등지는 기업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기업들은 생산비용 상승, 친노조 환경, 과도한 규제를 꼽는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현실에도 지금 국회에선 '경제 3법'이 속도를 내고 있다. 방망이만 두드리면 못할 게 없는 거대 여당이 몰아가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날개를 달아줬다. 정부는 이를 '공정경제 3법'이라 부르지만, 경제계는 이를 '기업 규제 3법'이라 부른다. 그만큼 재계는 '글로벌 기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규제'를 우려한다. 이로도 모자라 정부·여당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입법 예고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함께 추진하자는 주장은 일축했다. 이런 법들이 도입되면 소송전이 난무할 것은 자명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던 소리는 공허하다.

올해 국감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100여명의 기업인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한 것이 상징적이다. 국회는 규제 법안을 철회 혹은 연기해달라는 기업인의 읍소는 이미 외면했다. 그러니 여기엔 기업인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만 다분히 읽힌다.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과 관련해 단 한 명의 증인, 참고인도 받아주지 않았던 민주당이다.

국회에 불려나온 기업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해 해외 직접 투자는 사상 처음 600억달러를 넘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했다. 말 그대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가혹한 정치에 직면한 기업은 투자를 줄이거나, 접거나, 투자처를 옮기는 것으로 대응한다. 이는 경제 동력을 떨어트리고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애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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