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김희성(1710년대-1763?), ‘석천한유’(石泉閑遊)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채색, 119.5×87.5㎝, 홍주성역사관 소장
종이에 채색, 119.5×87.5㎝, 홍주성역사관 소장

조선 영조 24년인 1748년 한 유력자가 휴식 중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돌기둥이 높직한 붉은 단청의 누각이 배경인 것은 현직에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누각 옆 버드나무는 가지를 일렁이며 운치를 돋우고, 연못에서는 점박이 백마를 마부가 솔질하며 씻기는 중이다. 난간에 기대 이 모습을 내려다보는 주인공의 오른손에는 꽁지깃에 응주(鷹主)를 표시한 시치미와 방울, 붉은 수술 장식을 단 매가 있다. 누각 기둥의 화려한 환도는 그가 무반(武班)임을 말해준다.

무릎 앞에 있는 비단 책갑의 책, 필통 속의 붓, 벼루 위의 먹, 두루마리 등은 문무를 겸비했다는 뜻이고, 왼손을 내민 것은 막 장죽을 받아들려는 찰나이기 때문이다. 공손히 담뱃대를 올리고, 가야금을 연주하고, 술병을 가져오고, 수박 쟁반을 받쳐 든 관기인 듯한 4명이 시중을 들고 있다. 누각 아래 생김새가 준수한 개 두 마리도 그렸다. 인물과 동물의 묘사가 세세한 것은 그가 응주로서 자신의 모습을 애마, 애견과 함께 그림으로 남기려 한 까다로운 주문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호사를 누린 인물은 22세에 무과 급제하고, 몇 달 후 궁중의 궁술대회에서 세 발을 모두 명중시켜 경종에게 일약 절충장군(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을 제수 받은 석천(石泉) 전일상(1700-1753)이다. 전일상은 형 전운상과 형제 무장으로 유명했다. 명궁의 솜씨로 이 백마를 타고 이 사냥개를 데리고 이 매를 날리며 사냥했을 것이다. '석천한유'는 담양 전씨 문중에서 300여 년 동안 소중히 보존되어 오다 올해 충남 홍성 홍주성역사관에 기증되었다. 전운상, 전일상의 관복 전신상도 함께 기증되어 이 그림과 꼭 같은 전일상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석천한유'는 풍속화지만 주인공이 특정되어 있어 초상화의 특이한 예로 분류된다.

이 그림을 그린 김희성(김희겸이라는 다른 이름도 썼다)은 도화서 화원으로 이 해에 숙종의 어진 모사에 동참화사로 참여했다. 당시 전라우수사를 지내던 전일상이 어진화사 김희성에게 자신과 형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아울러 이 그림도 주문했다. 전일상은 자신을 추모할 매개물인 의례용 초상화로서 뿐 아니라 자신의 사적 정체성 또한 자손들이 기억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 바람대로 그의 후손들과 더불어 우리는 한 호걸남아로서 그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미술사 연구자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조국 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비상계엄 사과를 촉구하며, 전날의 탄핵안 통과를 기념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극우 본당을 떠나...
정부가 내년부터 공공기관 2차 이전 작업을 본격 착수하여 2027년부터 임시청사 등을 활용한 선도기관 이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2차...
대장동 항소포기 결정에 반발한 정유미 검사장이 인사 강등에 대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경남의 한 시의원이 민주화운동단체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