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대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에게 퀴즈를 냈다. "다음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일까요? 1번 억수로 많다, 2번 쌔빌렀다, 3번 천지삐까리다." 정답은 3번이었다. 천지(天地)와 낟가리·더미를 일컫는 삐까리가 합쳐진 천지삐까리는 온통 무더기로 널려 있다는 말이다. 억수로 많다, 쌔빌렀다보다 더 많은 것을 뜻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불기소한 것과 관련,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정권 교체 외엔 이 정권이 묻어버리고 있는 권력형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길이 없다"며 "정권이 교체되는 날 진실은 반드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면 진실이 밝혀질 권력형 사건이 어디 추 장관 아들 건뿐인가. 억수로 많다, 쌔빌렀다를 넘어 천지삐까리 수준에 달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실체를 규명해야 할 사건들을 이렇게 양산(量産)한 정권이 전무(前無)했다. 정권 충견으로 전락한 검찰이 뭉갠 사건만 해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살 등 진실을 밝혀야 할 사건이 국정 전반에 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되는 등 권력형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금융 사기 사건에 불과하다"고 쉴드(방어막)를 쳤지만 정권에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두 사건 공통점은 정·재계 유력 인사를 대표나 이사, 자문단에 이름을 올리거나 수익자로 참여시키고 정·관계 로비를 통해 불법행위를 숨겨왔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들처럼 이 정권도 집권 4년 차에 권력형 게이트로 레임덕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과거엔 기업의 뭉칫돈이 정권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사모펀드 비리는 노후 자금을 비롯해 서민들의 돈을 착취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커 더 악질적이다.
앞선 정권들과 달리 이 정권은 권력을 향한 수사를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혈안이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를 인사 학살하고 정권에 굽실거리는 검사를 통해 사건을 덮고 뭉개고 있다.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라는 말이 있다. 늦기는 해도 반드시 도착하는 진실을 이 정권은 무슨 수로 감당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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