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을 먹고 한 카페에 갔다. 메뉴 선택이 끝나고 잠시 전시돼 있던 텀블러를 구경하던 중 이상하리만치 눈이 가는 게 있었다. 이곳에선 대구 텀블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겉에 새겨진 그림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같이 간 동료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먼저 질문을 했다.
"와~ 대구 텀블러가 있네요. 근데 저기 그림이 경전철인가요? 대구에 경전철이 있나요?"
나와 같이 간 동료는 서울 사람이라 대구에 대해 깊은 지식은 없는 상태였다.
"아뇨, 아뇨, 대구도시철도 3호선 지상철인 거 같은데요."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참, 대구 제일의 자랑거리가 3호선 지상철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네요."
죽어 들어가는 소리로 나지막이 얼버무렸다. 부끄러움 때문일까? 급히 화제를 전환하였고 우리의 환담은 이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조금 전 그 텀블러의 그림이 자꾸 떠올라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순간 얼마 전 학생들과 같이 졸업작품전 주제로 선정한 '달성토성'(達城土城)이 떠올랐다. 당시 학생들에게 달성에 대해 많은 인문학적 역사학적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구의 모태(母胎)는 누가 뭐라 해도 달성이다. 달성은 삼국시대 초 지금의 성곽 형태가 완성되었고, 1천800년의 역사 동안 시대적 흐름 속에서 대구 시민과 함께 서 있었다. 마치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달구벌의 뿌리로 자리를 지키며 당당히 지내왔던 과거의 기억들은 처참하게 무너지게 된다. 일제는 대구의 정신을 훼손하기 위해 달성을 공원화시키면서 오락장 혹은 위락장으로 바꿔 버렸고, 1905년에 달성 내에 신사(神社)를 건립해 우리의 얼을 말살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사람들은 달성의 원래 의미를 차츰 잊어가게 되었다. 이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구전(口傳)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닫게 되는 역사적 경험이었고, 비극의 시작이었다.
해방 후에도 달성은 동물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혔던 공간이 한순간에 기억의 중심에 자리 잡기란 힘들다. 우리 스스로 공원화된 달성에 동물원을 만들었고, 그 후 머릿속에 달성은 달성공원 혹은 동물원이라는 함수관계를 정립시켰다.
달성공원으로 불리던 곳, 초등학생의 소풍 장소로 각광받던 곳, 혹은 동네 산책로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달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으며, 우리의 관점과는 무관하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최소한 대구의 정체성은 달성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자. 그리고 달성공원이 아니라 '달성'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적극적으로 홍보하자. 최근 들어 달성토성마을을 만들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서구청의 움직임이 그래서 반갑다.
대구의 역사는 대구 시민이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프랜차이즈 카페 한쪽에 마련된 대구 텀블러 속 그림이 자연스럽게 달성(達城)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타지(他地)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자랑스럽게 대구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지만, 뿌리와 역사가 없는 미래는 허울뿐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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