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가슴이 뛰는 대로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노란 군고구마가 고프고, 메주 냄새 나는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이 되면 우리는 문득 뒤를 돌아다본다. 때로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이며, 때로 무엇을 뒤에 두고 온 것은 아닌지 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한 올 한해는 '우선멈춤'으로 보낸 시간이 더 아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산다는 게 그런 거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코로나 정국'에 전 국민을 위로해 줬던 노래의 한 부분이다.

산다는 게 그렇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만족스럽지 않아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듯이 지금의 현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이 햇빛과 놀다간 골목에서 주운 웃음으로 털장갑을 대신하며, 겨울이 잠든 뒷산에서 토끼몰이하던 때는 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됐다. 혼자여서 더 자유롭고 혼자여서 자기에게 더 충실할 수 있다는 현대인을 보면서 왜 가슴은 먹먹한 것일까.

'고슴도치의 딜레마'(Hedgehog's Dilemma)가 생각난다. 추운 날씨에 고슴도치들이 서로 모여 따뜻하게 지내고 싶지만 가까이하면 서로의 바늘에 찔리게 된다. 그래서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체온을 나눴다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에 기원을 둔 말이다.

'인간 스스로의 자립'과 '상대와의 일체'라는 두 가지 욕망 사이의 갈등을 가리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로 필요에 의해 인간이라는 고슴도치들이 가까이 모이게 됐지만, 가시투성이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 온기를 나누는 거리를 두다가 이제는 혼자만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됐다.

둘이 모여야 사람(人)이 된다고 했다. 고슴도치들이 서로 배려하며 체온을 나누듯이 우리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경북도교육청도 모든 아이들이 아픔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해도 난치병 학생돕기 성금 모금을 했다. 2001년 전국 최초로 시작한 이 사업이 어느새 20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비롯한 교육가족들의 사랑으로 마련한 성금으로 1천312명의 학생에게 의료비를 지원했고 119명의 학생이 건강을 되찾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더욱 도움이 절실해진 난치병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모금과 휴대전화 문자 응원, ARS 기부 등 '언택트' 방식으로 모금으로 진행했다. 모금액은 다소 줄었지만, 휴대전화 문자 기부와 응원 등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점이 특별하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의 참여가 제일 많았다. 고사리손들이 모아준 작은 정성들이 난치병 학생들에게는 큰 용기와 희망의 불씨를 될 것이다.

더불어 떨림과 울림의 '시울림이 있는 학교'를 운영하고, 함께 걸으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아침마다 행복한 바르게 걷기'도 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의 빛깔과 향기를 머금고 피어날 수 있도록 실력 배양에 앞서 가슴 따뜻한 경북인을 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는데 겨우살이 준비도 못다 한 이웃들이 있다. 거동이 힘들어서, 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엄격히 적용되면서 기부금 모으기가 쉽지 않게 됐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야 한다. 홀로 계시는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의 온기가, 정성의 가슴이 세모의 찬바람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나와 너의 가시로 상처 입은 이웃이 혼자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보자.

점점 쌀쌀해지는 날에 다시 흥얼거린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가슴이 뛰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슴 뛰는 일을 함께 해보자.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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