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참담했던 올해에도 여러 국제적 유명 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축구 영웅인 디에고 마라도나의 별세는 축구팬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라도나가 뇌수술을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졌고 그의 나이가 60세밖에 되지 않았기에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아야 하는 축구팬들의 충격이 적지 않았다.
마라도나가 사망한 지 2주 만인 지난 10일 이탈리아의 축구 스타 파올로 로시가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커다란 족적을 남긴 두 축구 스타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잇따라 별세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로 축구사의 거대한 장(章)이 넘어갔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이 현역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빈 지는 오래됐지만, 생존하고 있는 것과 생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플레이를 추억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마라도나와 로시의 축구는 이제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빛나게 됐다.
마라도나가 시대를 뛰어넘은 불멸의 축구 천재라고 한다면 로시는 당대에 1등급으로 반짝였던 스타라고 할 수 있다. 마라도나가 축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로시보다 훨씬 크지만, 필자에게는 로시가 남긴 강렬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축구를 향한 꺼지지 않는 애정을 고 3 수험생때인 1982년 스페인 월드컵대회부터 꽃피웠고 로시는 그 월드컵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로시는 필자에게 축구의 첫사랑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1차 조별리그에서 답답한 경기력으로 3무승부를 차지, 지금과 다른 경기 방식이었던 2차 리그에 가까스로 진출했고 로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2차리그에서 이탈리아는 로시가 혜성처럼 두각을 나타내며 해트 트릭을 기록, 지코, 소크라테스 등이 포진한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3대2로 눌렀다. 로시는 폴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도 두 골을 터트려 2대0 승리에 앞장섰고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로 3대1 승리의 주역이 됐다.
로시는 당시 페널티구역 부근에서 순간적으로 빠른 움직임과 골 감각을 보여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동물적이고 천부적인 골 본능을 지녔다'는 표현은 6골로 득점왕과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그에게 딱 들어맞는 찬사였다. 로시에 대한 애정만큼 이탈리아 대표팀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 로시 뿐만 아니라 노장 수문장 디노 조프, 파괴력 있는 공격수 브루노 콘티, 거친 수비수 클라우디오 젠틸레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한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달리며 울부짖듯이 감격을 표현하던 마르코 타르델리의 인상적인 골 세리머니도 잊을 수 없다.
스페인 월드컵 대회도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어 당시 폴란드를 4강으로 이끌었던 스트라이커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도 뇌리에 남아있다. 보니에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폴란드가 한국에 0대2로 패하는 등 16강 진출에 실패한 직후 폴란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그보다 4년 전인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때부터 싹텄다.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과 마리오 깸뻬스, 레오폴드 루케, 다니엘 파사렐라 등으로 구성된 개최국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그 시절 흑백TV 화면을 통해 탱고춤과 같은 축구를 구사하며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세월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대 중반에 당시 세계최고의 축구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를 TV 화면으로 보면서 뮌헨 글라트바흐의 알란 시몬센의 경이적인 플레이를 놀라면서 지켜보았고 몇 년 후에 차범근이 독일 무대에 서게 되자 가슴 두근거리며 기뻐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마라도나는 1979년에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아르헨티나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천재적인 면모를 세상에 드러냈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상대 팀들의 거친 수비에 휘말렸고 아르헨티나도 중도하차했다. 그러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더할 나위 없이 특출난 활약에 힘입어 정상에 올랐다. 작지만 단단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하는 듯한 탄력의 드리블, 탄성이 튀어나오는 정교하고 창의적인 패스,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의 마라도나는 '축구 황제' 펠레와 동등한 지위에 올랐다.
시간이 흘러 맹목적인 애정을 지녔던 축구팬은 축구의 빛 속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알게 되었다. 아르헨티나가 1978년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비열한 군사정권이 더러운 승부 조작의 마수를 뻗친 의혹을 전해 들었다. 마라도나가 선수 말년과 은퇴 후에 마약과 약물 복용, 기행을 일삼으며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고 로시가 스페인 월드컵 이전에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한때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탈리아 축구가 때로 야비한 반칙을 서슴지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라도나와 로시는 애정을 거둘 수 없는 대상이었던 반면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은 가슴 속에서 멀어져갔다.
축구팬의 뜨거웠던 애정도 조금은 차분하게 관조하는 양상으로 변해갔다. 평균 수명을 떠올리며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를 앞으로 몇 번 정도 더 볼 것이라고 계산할 정도로 정열적이었으나 이제는 더는 그러지 않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3시까지 잠들지 않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같은 에너지를 불태울 수 없다.
지금은 손흥민의 플레이에 빠져 그의 경기를 매번 보지는 않지만 결과는 꼭 챙겨본다. 한국 축구에서 드물게 출현하는 이 천재적인 선수는 재능보다 더한 노력의 결정체로 전성기에 접어든 활약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슛을 할때마다 득점 확률이 높은, 압도적인 골 결정력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월드 클래스'라는 찬사가 항상 따라다닌다.

세계 정상급 선수로 자리잡은 손흥민은 17일 리버풀전에서도 치명적인 골 결정력으로 득점했으며 18일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 해 동안 최고의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푸슈카시상을 수상했다. 손흥민이 지난 시즌 번리 전에서 70m를 질주하며 상대 선수 7명을 제친 끝에 넣은 골로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 골은 한동안 뜨거운 화제를 모았으며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대회에서 영국의 수비수 6명을 제치며 성공한 골과 종종 비교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손흥민은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 선수로 알려져 팬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성을 본딴 애칭 '소니'는 햇살같이 기분 좋은 선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건전한 사생활을 지닌 선수라는 점이다. 최근 한 외신은 손흥민의 건실한 생활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 점이 그가 성공한 비결 중 하나이며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는 이유라고 꼽기도 했다.
외국의 축구 스타들이 파티를 벌이며 문란한 사생활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손흥민은 그렇지 않아 확연히 비교된다. 세계 정상의 팝 그룹으로 떠오른 방탄소년단이 밝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노래하면서 팬들을 배려해 사랑받는 것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많은 축구 스타들의 행로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지만, 손흥민은 그의 별칭처럼 햇살 비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하길 성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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