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적의 성탄선물' 백혈병 환자에 조혈모세포 준 영덕 공무원

영덕군청 심정훈 주무관, 2009년 기증 등록
'2만분의 1' 확률 적합자 연락, 11월 채취
가족의 반대 설득하고 기증 위해 건강관리도 철저히

심정훈 영덕군청 주무관
심정훈 영덕군청 주무관

"처음엔 외부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통해 앞으로 기증자가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공개를 수락했습니다. 제 조혈모세포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돼 더없이 기쁩니다."

경북 영덕군 한 공무원이 생면부지의 백혈병 환자를 위해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영덕군청 심정훈(38) 주무관. 심 씨는 지난 2013년 1월 세무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현재 재무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심 씨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 2009년 이웃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들에게 필요한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관련 기관에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다.

조혈모세포는 말 그대로 피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라는 뜻이다. 모든 종류의 혈액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인데, 이 세포가 자라고 증식해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갖가지 면역세포를 만든다. 백혈병이나 심각한 빈혈에 걸리면 제대로 된 피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피를 만드는 기존 체내 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

백혈병의 경우 항암제로 기존 조혈모세포와 암세포를 모두 없앤 뒤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과거엔 골반에서 직접 골수를 채취하는 '골수 조혈모세포 채취법'을 주로 사용했다. 옛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데, 기증자가 처치와 입원까지 일주일 가량 걸리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위험한 수술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이런 방법을 거의 쓰지 않고, 훨씬 간단한 '말초 조혈모세포 채취법'이 등장했다.

심 씨는 지난 5월 조직적합성항원(HLA)의 유전형질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 위해서는 기증자와 환자의 조직적합성항원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한다. 타인의 경우 일치할 확률이 2만분의 1에 불과하다. 가족 중에서 기증자를 찾을 수 없다면, 적합한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데 시기 적절하게 그런 기증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셈이다.

기증을 결심한 심 씨는 먼저 자신의 가족에게 기증 결심을 알렸으며, 반대하는 가족을 설득해 기증하는 날까지 건강관리에 전념했다. 유전자 검사 뿐만 아니라 건강검진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증을 앞두고 촉진제 주사를 맞은 심 씨는 졸음이 몰려오고, 허리통증과 두통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증과 피로감을 느꼈다고 한다. 비록 골수를 채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헌혈과 같은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고 해도 기증자는 적잖은 용기와 신체적 부담을 견뎌내야 한다.

심 씨는 결국 지난 11월 5시간에 걸친 조혈모세포 채취를 끝으로 기증을 마무리했다. 기증받은 환자에겐 더없이 뜻깊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된 셈이다.

이희진 영덕군수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때에 마음 따뜻한 공무원이 우리 군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힘이 난다"고 했고, 심 씨는 "걱정했던 것만큼 조혈모세포 기증이 어렵지는 않았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기증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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